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는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안견(安堅, ?~?)이 1447년(세종 29)에 비단 바탕에 그린 산수화로 수묵담채화(106.2×38.6㎝)다. 1447년 4월 20일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 이용(李瑢)이 꿈속에 도원(桃源)을 거닐었던 내용을 듣고서, 안견이 상상하여 그렸다. 이상세계와 현실세계가 공존하는 꿈속의 낙원으로 꿈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안평대군이 쓴 발문에 의하면, 안견이 이 걸작을 단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여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안견의 그림뿐 아니라 조선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안평대군이 행서로 쓴 제서(題書)와 발문(跋文)이 있다. 그리고 1450년(세종 32) 정월에 쓴 시 한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당대 문사(文士)와 1명의 고승(高僧)이 쓴 모두 23편의 찬문(讚文)이 곁들여져 있다. 찬문은 신숙주(申叔舟), 이개(李塏), 하연(河演), 송처관(宋處寬), 김담(金淡), 고득종(高得宗), 강석덕(姜碩德), 정인지(鄭麟趾), 박연(朴堧), 김종서(金宗瑞), 이적(李迹),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윤자운(尹子雲), 이예(李芮), 이현로(李賢老), 서거정(徐居正), 성삼문(成三問), 김수온(金守溫), 만우(卍雨), 최수(崔脩) 등의 친필 시문으로 두 개의 두루마리로 나뉘어 표구되어 있다. 길이는 각각 11.2m와 8.57m다.


안평대군이 박팽년을 데리고 꿈속 유랑을 나서는 데서 시작하여, 복숭아 숲과 험준한 산을 지나 도원에 도착한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총 네 단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실 세계는 정면에서, 도원경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俯瞰法)으로 구별해 표현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원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다. 서양의 피카소보다 400여 년을 앞선 입체기법과 부감법을 적용해 예술성이 뛰어나다.


시문은 그 내용의 문학적 특징은 물론 서풍(書風)까지 파악할 수 있어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구현하고 서예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조선 초기 세종대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몽유도원도는 정확히 불법 반출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일본 奈良(나라)현 天理大學(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 정부가 鹿児島(가고시마) 薩摩(사쓰마) 가문의 소장품으로 검안까지 찍어 중요문화재 회화 제1152호로 등록했다. 1986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재개관할 때 ‘조선 초기 서화전’에 전시된 것이 국내를 떠난 뒤 처음 공개된 것이다.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 전기 국보전’과 2009년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 등 모두 세 번 국내에 전시되었다.
  
조선시대 산수화의 절정인 국보급의 몽유도원도가 우리나라에 영구 반환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ECI)는 12월 27일 ECI갤러리에서 일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몽유도원도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실제 반환까지는 일본의 국보에 해당하는 중요문화재 해제를 위한 여러 수순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본궁기념재단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와 관련된 일본 왕실의 한 가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새천년을 맞이하여 2000년 밀레니엄시리즈 제7집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유물과 유적 중 하나로 몽유도원도를 우표에 담았다.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는가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씨고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직하지 않은가

안평대군

[참고] 나무위키 출처. 인터넷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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