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반도의 불교왕국 ①
말레이반도의 불교왕국 ①
인도문명의 동남아 전파 ‘인도화 물결'
오늘날의 믈리카해협 보다 최단거리의 크라운하가 존재했다. 말레이반도를 관통하는 크라운하를 통하여 인도와 중국 등의 동서문명 교류가 이루어졌다.
인도의 브라만, 불교 승려, 학자, 예술가, 상인 등이
끊임없이 말레이반도로 들어왔다. 말레이반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려서 동남아 중심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무엇보다 인도에서 벵골만만 건너면 바로
닿았다. 많은 인도인이 말레이반도로 들어가 정착했다
말레이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무역중심이었고 문명교류의
매개처였다. 지금은 믈라카해협이 중요하지만 이전에는
말레이반도 중심으로 관통하는 크라운하가 존재했다.
크라강을 통해 벵골만에서 시암만으로 연결하는 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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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해양강국 스리비자야 시대에 말레이반도에 세운
산스크리트 비문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벵골만을 통한 인도문명 전파
불교는 인도에서 바닷길로 동진했다. 서쪽은 강력한 페르시아 제국이 자리 잡고 그들만의 조로아스터교 같은 기성 종교가 존재했다. 그래서 불교의 서진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등의 빈 고리를 찾아서 전파되었다. 이른바 서역으로의 전파로다. 반면에 불교의 동진은 강력한 기성종교가 자리 잡지 않았던 동남아의 바닷길을 빈 고리로 찾았다. 그 중심 통로는 벵골만이었다.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같은 동남아라고 해도 북방의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 방글라데시는 온통 이슬람국가지만 본디 불교왕국이었다. 갠지스강이 오늘날의 방글라데시 하구의 다카로 흘러 들어감을 생각해본다면, 벵골문명권은 본디 하나였다.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독립된 국가로 분리된 것은 고작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북방으로부터 육로로 티베트불교가 남하하여 바닷길로 들어온 남방의 상좌부불교와 문화 접변이 이루어진 곳이 미얀마다. 미얀마는 북방과 남방의 불교가 만나는 접점이었다. 그러나 동남아불교의 주력은 역시 바닷길이었으며, 이전 연재에서 다루었듯이 인도아대륙 북동 해안의 칼링가나 남동해안의 팔라바, 촐라왕국의 역할이 지대했다.
인도에서 동남아로의 문명전파는 2500여 년 전 부처님 이전시대에도 있었다. 많은 인도사람이 오늘날의 말레이반도와 인도차이나, 인도네시아 제도로 건너갔다.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이 지중해와 흑해 연안 등지에 식민도시를 건설한 것과 같은 세계사적 디아스포라(집단이주)의 맥락이 동남아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고대 및 중세시대에 동남아에 인도 식민지가 건설된다. 그 식민지라는 것은 근대적 의미의 식민지와는 전혀 다르다. 종족 이동과 정착, 문명의 전파와 이식에 따른 정착촌의 성립을 뜻한다. 대부분 이들 동남아 식민지는 인도아대륙 동해안에서 이주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동남아와 인도의 무역관계는 당연히 문명교류를 수반했다.
한국 불교계에는 남방불교의 전파를 오로지 ‘불교’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편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불교 이외에도 힌두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산스크리트 문자, 사원 건축양식, 종교의례 등이 망라되었다. 사람 이름, 흔히 사용하는 어휘, 예술이나 공예품에서 인도의 흔적이 뚜렷하다.
불교만이 독립적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다. 힌두교와 언어 등도 함께 바다를 건넌 것이다. 불교는 지금도 미얀마에서 베트남까지 주요 종교로 남아있으며, 발리섬처럼 힌두교가 주류인 곳도 산재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인도에서 동남아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도문명도 동방으로부터 받은 영향 덕분에 한결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팔라바문자로 된 옛 말레이어 비석(벨리퉁, 686년).
동남아의 인도인 디아스포라
말레이반도에서 남인도 타밀에서 넘어온 것으로 비정(比定)되는 산스크리트 비문이 다수 발견됐다. 이는 두 가지 경우다. 남인도 팔라바나 촐라 상인 그룹이 일부 넘어와서 정착했을 가능성이다. 타밀 상인집단의 흔적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 베트남 해안 등에서 확인되고, 인도 상인의 광범위한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진 결과다. 그들은 힌두교와 불교를 가지고 왔으며 이들 종교유적이 다량 발굴되고 있다. 그래서 ‘힌두-불교시대’라고도 부른다. 같은 유적에서 두 종교의 신상이 동시에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
원주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산스크리트를 수용하고 이를 활용한 집단이 말레이 원주민이다. 지역 통치자들은 브라만이나 불교 승려를 초청하여 정치적·개인적 안정을 꾀했다. 이 경우에 이들을 실어 나르는 주체는 상인들이었다. 상인들의 큰 선박에 브라만과 불교 승려가 동승해 힌두와 불교를 전파했다.
동남아 선주민은 본디 문자가 없었다. 이에 팔라바어를 차용해 토착 언어와 결합한 언어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냈다. 한자문화권이라고 하여 모두 중국인이 직접 이주하여 한자가 확산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경우다. ‘인도화-식민화’라는 근거 없는 일방통행적·문명 우월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도문명을 받아들인 말레이 원주민의 주체적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중국에서 한자 등을 받아들인 고조선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인도의 브라만 성직자, 불교 승려, 학자, 예술가, 상인 등이 끊임없이 말레이반도로 들어왔다. 말레이반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려서 동남아 중심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무엇보다 인도에서 벵골만만 건너면 바로 닿았다. 많은 인도인이 말레이반도로 들어가서 정착했다.
말레이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무역의 중심이었고 문명교류의 매개처였다. 지금은 믈라카해협이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말레이반도 중심으로 관통하는 크라운하가 존재했다. 크라강을 통하여 벵골만에서 시암만으로 연결하는 운하였다. 인도인들이 최단거리로 크라운하를 통과했고, 마찬가지로 동쪽의 중국인도 크라를 통하여 인도양으로 손쉽게 진출했다. 말레이반도를 통과하면 시암만에 이르고, 북상하면 남중국해로 접어든다. 동서를 연결하는 크라운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많은 도시국가가 성립되었으며, 이를 항시(港市) 국가라고 부른다.
인도와 중국문명 징검다리 말레이반도
인도문명은 그 자체 고대사회의 문화적 우성으로서 동남아로 확산됐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았다. 인도문명의 동남아 확산과 전파는 상인을 통한 경제적 행위는 물론이고 힌두교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정신적·문화예술적 영향을 포함했다. 도량형 등 국가 통치 룰을 정하는 정치와 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언어 확산, 나아가서 이주하거나 장기 체류하는 상인을 통한 국제결혼을 통해 종족 결합과 혼혈이 강화됐다. 인도아대륙에서 동남아 교섭의 주력은 동쪽 벵골만에 위치한 세력이었다.
그 덕분에 말레이반도에는 많은 소왕국이 건설되었으며, 대부분 힌두교와 불교를 모셨다. 오늘날 말레이반도의 곳곳에서 많은 힌두신상과 불상이 발굴되고 있다. 그들이 이들 종교를 가지고 말레이반도에 정착했다는 증거들이다. 인도문명의 동남아 전파사를 규명하는 일은 곧바로 남방불교의 전파사를 규명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유의할 점은 동남아 국가들은 인도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중국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중국으로의 사신 파견은 인도 못지않게 중국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다는 직접적 증거다. 남조와 당나라의 구법승도 말레이반도를 이용하여 인도로 갔다. 그런 의미에서도 말레이나 인도네시아 섬은 주체적 입장에서 인도와 중국의 문명을 수용하고 이를 적절하게 토착문화에 변용하고 있었던 상황으로 보인다.
말레이반도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동서 관통로였던 것이 분명하다. 인도인은 디아스포라를 통하여 다양한 규모의 항시 국가를 만들었다. 일종의 도시국가연합 같은 성격으로 여러 항시가 뭉쳐서 왕국을 형성했다. 말레이반도의 특성상 동쪽으로 시암만, 서쪽으로 벵골만에 항시를 마련했다. 항시에는 시장 기능, 수공업 생산기지, 식량을 댈 수 있는 농업 배후지대 등이 복합적으로 갖추어졌다.
항시국가는 1000년 넘게 존재했다.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즉 푸난시대로부터 스리비자야, 후대에는 이슬람 도착 이후의 술탄왕국까지 각 시기를 달리하면서 때로는 같이, 때로는 별도로 존재했다. 중국 문헌에 다양한 형식으로 말레이국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중국이 이 지역을 중요시했다는 증거다. 특히 해양강국 스리비자야 시대에 말레이반도에 세운 산스크리트 비문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말레이반도에 존속하던 나라의 존속 기간, 중심 지역, 연결된 도시 등은 조금 모호하다. 문헌이 없거나 산발적이고 애매하기도 하다. 특히 시대에 따라서 항시들의 이합집산도 보여진다. 이제 그 각각의 말레이반도의 왕국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주강현 해양문명사가 [불교신문 37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