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법계의 실상이 오롯이 드러나는 남원 실상사

7390882@hanmail.net 2022. 5. 1. 06:48

법계의 실상이 오롯이 드러나는 남원 실상사

 

남원 실상사 앞마당에 들어서면 다보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상징한 두 삼층석탑,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을 상징하는 석등(長明燈)과 보광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부처 …
 
실상사는 현재 불교의 실상을 바로 보고
행동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사찰이 되었다

 

무진법계가 인드라망인 ‘실상사 화엄학림’
생명의 존엄성과 공존의 법칙을 알려주는
‘실상사 작은학교’, 전국 도보순례를 통한
‘생명평화운동’, 자연의 소중함 일깨워 준
‘삼보일배’와 ‘실상사 귀농학교’ 등 …

실상(實相), 생멸의 상을 떠난 진여의 세계를 알기는 그리 쉽지 않다. 실상은 외형적인 모습이나 관념적인 생각으로 일정하게 정해진 상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참다운 세계를 말한다. 이것을 <법화경>에서는 실상, <화엄경>에서는 법계(法界)라 말한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방장산에 숨어 있는 남원 실상사는 그대로의 모습이 참다운 세계임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사찰이다. 달궁과 뱀사골을 지나는 지리산의 맑은 물줄기는 만수천을 이루어 들녘과 절을 끼고 한바탕 춤을 추듯 빙 둘러 흐른다. 실상사는 동쪽 천왕봉, 남쪽 반야봉, 서쪽 바래봉, 북쪽 서룡산, 삼봉산으로 첩첩 둘러싸인 황금들판 가운데 보석처럼 자리 잡고 있다. 실상사는 청룡이 여의주를 움켜잡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선국사는 실상사 연못 속에 철항아리(鐵甕)를 넣어두어 용이 잡고 산의 기운을 누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철항아리가 사라져 청룡이 기운을 쓰지 못한 것일까? 지리산은 좌우대립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실상사는 지리산에서 희생된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1000일 천도재를 지내 구천을 떠도는 자도, 살아있는 자도 실상을 바로 보도록 했다.

828년 실상산문(實相山門)을 세운 홍척국사(洪陟國師)는 수철화상이 제자가 되기를 청하자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수철화상이 대답했다. “스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이처럼 실상사는 실상을 묻고 답하는 곳이다. 해탈교를 지나면 1725년과 1731년에 세운 두 석장승이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실상을 보라는 듯 길손을 맞이한다. 땋은 수염, 주먹코는 영락없는 옛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특히 미간의 백호와 머리의 육계는 부처님 형상을 하고 있어 장승이 미륵불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실상사 앞마당에 들어서면 다보여래와 석가모니불을 상징한 쌍탑 부처님,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을 일러주신 장명등 부처님, 광명을 비추어 설법하는 노사나불의 화엄회상 보광전이 눈앞에 펼쳐 보인다.

실상산문 창건 당시 탑 추정

삼층석탑 상륜부. 상륜부가 온전한 것은 유일하다고도 한다.


실상사에는 유일하게 탑의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신라 불탑(삼층석탑, 보물) 2기가 있어 감탄케 한다. 특히 불탑의 상륜부는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물음에 “부처님은 이런 분이다”란 것을 보여준다. 맨 아래 사각형 받침 ‘승로반(承露盤)’은 ‘은혜를 베푼 이를 높이 공경하여 모시는 대’란 뜻이다. 그 위 ‘복발(覆鉢)’은 응당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기에 일체중생은 공양할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발우가 엎어진 모습은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무한한 복을 내림을 표현했다. ‘앙화(仰花)’는 연화좌를, 그 위 ‘보륜(寶輪)’은 부처님을 상징한 수레바퀴로 진리의 말씀이 영원히 전해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보개(寶蓋)’는 하늘의 일산(日傘)으로 보륜으로 표현된 부처님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수연(水煙)’은 물안개로 부처님이 계시는 신성한 곳임을 나타냈다. 그 위 둥근 ‘용차(龍車)’는 용을 상징하여 부처님을 수호하는 의미를 지닌다. 상륜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보주(寶珠)’는 중생이 원래 부처라는 깨달음의 완성을 표현했다. 실상사 불탑은 실상산문 창건 당시의 탑으로 추정된다.

중생제도 ‘진리의 빛’ 상징 장명등
불탑으로 부처님의 실상을 보았다면 쌍탑 중앙에 자리한 장명등(長明燈, 석탑ㆍ보물)은 법의 실상을 보여준다. 장명등은 단순히 불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 즉, 경전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잡아함경> ‘아육왕경’에 “법의 등불이 항상 세속에 남아 어리석은 자들의 어두움을 소멸시킨다(法燈常存世 滅此愚癡冥)”고 했고,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법왕이신 여래는 세간을 벗어나 능히 세간을 비추는 미묘한 법의 등불을 밝히신다(如來法王出世間 能然照世妙法燈)”고 했다. 언제나 진리의 빛은 중생들이 무명에서 벗어나 부처에 이르도록 한다. 이처럼 장명등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간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상징성을 지닌 조형물로 타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조형이다. 장명등은 높이 5.08m, 지붕 폭 1.83m의 큰 석등으로 역시 홍척국사가 실상산문을 창건할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약사전 철조약사여래좌상. ‘약 그릇’을 들고 있지 않아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에서 본존으로 모시던 노사나상(盧舍那像)이라고도 한다.


실상사 보광전 또한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설한 장소인 보광당을 말하고 있어 실상을 알기에 충분한 이름이다. 법장 현수스님은 <화엄경 탐현기>에 보광법당을 “무진법계의 일진(一塵)ㆍ일행(一行)은 모두 드넓은 인드라망에 달린 구슬처럼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나타나므로 보(普)라 하고, 두루 원명(圓明)하여 밝게 빛나므로 광(光)이라 하며, 바른 법칙이므로 법(法)이라 하고 곧 법이 인연에 응하여 그늘을 만들므로 당(堂)이라 한다”고 풀이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보광전은 당연히 약사전의 노사나불(사찰에서는 ‘약사불’로 부르고 있다)을 모셔야 실상에 부합한다. 현 보광전과 극락전 두 곳에 같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니 이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약사전에 모신 노사나불(약사불)은 9세기 당시 선종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철불로 창건 당시에 모신 높이 2.69m의 부처님이다. 인체가 당당하고 온화하며, 나발은 촘촘하고 육계는 알맞게 솟아올랐다. 눈은 일자 형태로 편안함을 주며 목에는 삼도가 나타나고 법의는 통견을 했다.

행동으로 중생 구제하는 사찰

석장승. 땋은 수염, 주먹코는 영락없는 옛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미간의 백호와 머리의 육계는 부처님 형상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869년에 지리산을 유람하고 실상사에 들린 독립운동가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지리산 북록기>에서 “실상사에 도착하니 절은 평지에 있고 큰 개울은 푸르게 둘러져 있다. 불당은 높게 솟아 100척이나 되는데 단층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러나 1883년 양재묵 일당이 실상사의 땅을 차지하려고 절에 불을 지른 바람에 장엄했던 전각은 사라져 버렸고 벌판에 전각 3동만 남았다고 한다.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선 실상사는 불교의 실상을 바로 보고 행동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사찰이 되었다. 무진법계가 인드라망인 ‘실상사 화엄학림’, 생명의 존엄성과 공존의 법칙을 알려주는 ‘실상사 작은학교’, 전국 도보순례를 통한 ‘생명평화운동’,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삼보일배’, ‘실상사 귀농학교’ 등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 그자체가 부처라는 실상(實相)을 알게 하는 곳이 바로 실상사이다.

 

실상사 석등(보물)


실상사 수철화상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떠나갈 것이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힘써 반드시 불법(佛法)의 뜰에서 노닐어라.”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 37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