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19. 12. 11. 17:44

이채 초상 보물1483호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性理學者)이자 문신(文臣)인 이채(李采, 1745~1820)의 초상이다. 이채(李采)의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 본관은 우봉(牛峯)으로, 영조 50년(1774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司憲府)ㆍ호조ㆍ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를 지냈다. 음죽현감(陰竹縣監))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정조 14년(1790년) 다시 벼슬길에 올라 홍릉령(弘陵令), 지례현감, 선산부사, 상주ㆍ충주ㆍ황주의 목사, 익위사(翊衛司)의 위수(衛率)ㆍ사어(司禦) 등의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戶曹參判), 한성좌우윤(漢城左右尹) 및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이 이채(李采) 상은 심의(深衣)를 입고 정자관(程子冠)을 쓴 뒤 두 손을 공수(拱手)한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인데, 눈부시게 수려한 용모를 실로 뛰어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 상부에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 1732~1815)과 기한(綺園) 유한지(兪漢芝, 1760~1834) 등 당대 명필들의 미려한 찬문(贊文)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조선후기 연거복(燕居服) 초상화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진다. 이 이채(李采) 상은 조선후기 19세기 초반의 가장 대표적인 유학자(儒學者) 상으로서 눈빛이 형형한 얼굴의 정교한 묘사는 조선후기 초상화가 도달했던 높은 수준의 사실성을 대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