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20. 7. 28. 08:36

조속 초서 창강필적 보물1670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조속(趙涑) 초서(草書) 창강필적(蒼江筆蹟)’은 조속(趙涑, 1595~1668)이 벽성군수로 재임하던 1646년(인조 24) 7월에 당시(唐詩) 오언ㆍ칠언율시 등을 대중소로 크기를 달리하여 쓴 것이다. 일반 서책처럼 선장(線裝)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말미에 “병술초추, 창옹재벽성견한(丙戌初秋, 滄翁在碧城遣閑)”이라 하여 52세 되던 1646년(인조24) 7월에 벽성에서 한가한 틈을 보내고자 썼음을 알 수 있다. 조속(趙涑)의 필적이 꽤 남아 있는데 대부분 단편이거나 여러 사람의 필적과 함께 묶여 전한다. 이에 비하여 《창강필적(蒼江筆蹟)》은 조속(趙涑)의 단독 서책으로 그의 전형적인 서풍을 잘 보여주는데, 특히 당시로는 드물게 원나라 선우추(鮮于樞)의 서풍과 유사성을 보여 주목된다. 조속(趙涑)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희온(希溫), 호는 창강(滄江)·창추(滄醜)·취추(醉醜)·취옹(醉翁)으로,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1627년(인조 5) 덕산현감을 거쳐 장령·진선을 역임하고 상의원정(尙衣院正)에 이르렀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으나 훈명(勳名)을 사양함으로써 청표탁행(淸標卓行)으로 후세에 추앙을 받기도 했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우리나라 역대 명필들의 금석문을 수집하여 이 방면의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