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유산/보물
보물 1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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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10. 08:40
윤순 필적 고시서축 보물1676호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고시서축(古詩書軸)》은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명필 백하(白下) 윤순(尹淳, 1680~1741)이 58세 되는 1737년(영조 13) 3월에 태화산에 쓴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해행초로 쓰여 있는데, 소해는 왕희지풍, 중자 해서는 동기창풍, 행서와 초서는 미불 서풍을 바탕으로 동기창 서풍이 가미되어 있다. 또 윤순(尹淳)의 글씨 앞뒤에는 당대와 후대의 명사 네 사람의 제발(題跋)이 딸려 있으며, 윤순(尹淳) 서예의 장처와 한계를 지적하고 있어 조선후기 서예비평의 본격적인 예로 주목된다.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윤순(尹淳)의 노년시절 서풍을 가장 대표하는 필적이다. 윤순(尹淳)의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화(仲和), 호는 백하(白下)·학음(鶴陰)으로, 1712년(숙종 38) 진사시에 장원, 1713년 증광문과에 급제, 부수찬(副修撰)을 지냈다. 1723년(경종 3) 응교(應敎) 때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7년(영조 3) 이조참판 등을 거쳐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감호제군사(監護諸軍使)가 되었으며 이어 공조판서에 올랐다. 예조판서를 거쳐 1735년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경기도관찰사를 지내고 평안도관찰사 때 관하순찰 중 벽동(碧潼)에서 순직했다. 송나라 미남궁체(米南宮體)를 잘 쓰는 당대의 명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