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20. 11. 21. 09:21

 

경복궁 향원정 보물1761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세종로 1-1) 경복궁

향원정(香遠亭)은 경복궁(景福宮)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香遠池) 내의 가운데 섬 위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향원지(香遠池)의 ‘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서 왕이나 왕족들이 휴식하고 소요하던 침전의 후원으로 여기에는 향원지(香遠池)와 녹산(鹿山) 등 원림(苑林) 공간이 된다. 향원지(香遠池)는 세조 2년(1456)에 조성되어 취노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짓고 연꽃을 심었다는 기록이「세조실록」에 보인다. 향원지(香遠池)는 4,605㎡의 넓이에 방형인데, 모를 둥글게 죽인 방형의 연지에는 연꽃과 수초가 자라고, 잉어 등 물고기가 살고 있다. 향원지(香遠池)의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 밑에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이다. 이 향원정(香遠亭)에 들어가는 다리인 '취향교(醉香橋)'는 목교로서 1873년에 설치되었다. 원래는 건청궁(乾清宫)에서 향원정(香遠亭)으로 들어가도록 북쪽에 있었던 다리인데, 6·25때 부서진 것을 1953년에 복구하면서 남쪽으로 옮겨 놓았다. 조선시대 원지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길이 32m,폭 165cm)이다. 다리 동쪽으로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인유문(麟遊門)이란 일각문(一角門)이 열렸었고 또 그 남쪽에 봉집문(鳳集門)이 있어 연못은 한층 아늑한 정취(情趣)에 싸여 있었다. 향원정(香遠亭)은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乾清宫)을 지었는데 그 건청궁(乾清宫) 앞에 연못을 파서 그 가운데 섬을 만들고 세운 2층 정자로, 고종 4년(1867)부터 고종 10년(1873)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향원정(香遠亭)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취향교(醉香橋)라는 다리가 있으며, 남쪽에는 함화당(咸和堂), 집경당(緝敬堂)이 위치해 있다. 정자의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아래·위층이 똑같은 크기이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으로 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일층과 이층을 관통하는 육모기둥을 세웠다. 공포(栱包)는 이층 기둥 위에 짜여지는데, 기둥 윗몸을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枓: 대접받침)를 놓고 끝이 둥글게 초각(草刻)된 헛첨차를 놓았다. 일출목(一出目)의 행공첨차(行工檐遮)를 받치고, 다시 소로를 두어 외목도리(外目道里)밑의 장혀를 받친 물익공이다. 일층 평면은 바닥 주위로 평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고, 이층 바닥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사방둘레의 모든 칸에는 완자살창틀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육모지붕으로, 중앙의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중심점에 절병통(節甁桶)을 얹어 치장하였다. 향원정(香遠亭)은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경복궁(景福宮) 후원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안겨있는 상징적 대표 건물이다. 육각형 초석, 육각형 평면, 육모지붕 등 육각형의 공간을 구성하여 섬세하고 미려하게 다듬은 모든 구성요소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비례감이 뛰어난 정자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