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21. 1. 12. 16:33

해남 대흥사 천불전 보물1807호

소 재 지; 전남 해남군 삼산면 데흥사길 400(구림리 799) 대흥사

두륜산(頭崙山)에 위치하는 대흥사(大興寺)는 대둔사(大芚寺)라고도 하는데 통일신라말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작은 절이었으나, 임진왜란(1592) 이후 서산대사(西山大師)에 의해 큰 규모의 사찰로 성장하였다. 대흥사(大興寺) 천불전(千佛殿)은 순조 11년(1811)에 불에 탄 뒤 2년 뒤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륜산(대둔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한 넓은 산간분지에 계류를 끼고 자리한 대흥사는 여러 불전들을 지형적 조건에 맞추어 독립된 군을 이루어 배치함으로써 정연한 가람배치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대흥사(大興寺)의 입지는 『대둔사지(大芚寺誌)』(1823)의 기록에 나타나듯이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북원에는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백설당, 청운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千佛殿)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종무소 등이 또 하나의 군을 이루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남원의 오른편에는 표충사와 부속건물, 성보박물관이 있고 그 뒤편에 대광명전 영역이 별원을 형성하고 있다. 해남 대흥사(大興寺) 천불전(千佛殿)은 1813년에 중건된 건물로 대흥사(大興寺) 남원의 중심건물로서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쌍봉사(雙峰寺)의 화원승(畵員僧)인 풍계(楓溪) 현정(賢正)이 1821년에 쓴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등을 통해 건물의 중건과 천불 조성, 봉안의 역사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의 중앙에는 목조 본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6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천 개의 불상이 배열되어 있다. 높이 쌓은 석축단(石築壇) 위에 있는 천불전(千佛殿)은 낮은 기단(基壇)에 세운 전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자연석(自然石) 기초(基礎) 위에 일부 괴목(槐木)으로 민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견고하게 보이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놓고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작(多包作)을 꾸몄다. 건물 앞면에는 궁창판에 안상(眼象)을 하였고 정교(精巧)한 국화무늬(菊花紋)·연화무늬(蓮華紋)의 꽃살 분합문(分閤門)을 달았는데 중앙칸은 3짝, 좌우협칸(左右夾間)은 2짝이다. 내부 중앙에 목조(木造)의 본존불(本尊佛)을 봉안(奉安)하였으며 주위에 옥석(玉石)으로 조각한 천(千)의 작은 불상을 배열(配列)한 것이 특이(特異)하다. 건축적으로는 평면 비례, 공포 배치, 상부 가구 등에서 천불을 봉안하기 위한 합리적인 계획수법을 볼 수 있으며, 공포의 구성과 세부적 조각수법, 빗천장과 우물천장의 장식과 구성, 창호 등은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구조 또한 견실하다. 이러한 공포, 빗천장, 우물천장 등의 구성과 세부적 수법은 인근의 보물인 미황사 대웅전(1754년), 불갑사 대웅전(1764년), 불회사 대웅전(1808년) 등과 유사한 수법을 보여주며 비교되어 가치가 높다. 이처럼 대흥사(大興寺) 천불전(千佛殿)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천불전 건물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