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21. 11. 24. 12:42

동무

서무

신삼문

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 보물2098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20(교동 18-8)

 「경주향교(慶州鄕校) 동무(東廡)·서무(西廡)·신삼문(神三門)」은 2011년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향교 대성전의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건물들로, 1604년(선조 37)에 중건된 동무ㆍ서무는 정면 12칸으로 우리나라 향교의 무(廡) 건축물(서울 문묘 동무·서무 11칸, 상주향교 동무·서무 10칸) 가운데 가장 길며, 큰 도리칸(도리로 연결된 칸으로 대게 정면을 뜻함)의 규모를 갖고 있고, 장식을 지극히 억제하고 있다. 기둥과 인방재(기둥과 기둥사이에 건너지르는 가로 목재. 즉 기둥을 상중하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함)가 가로세로로 이루어진 격자형의 골격에 회벽(석회를 반죽하여 바른 벽)으로 마감한 단순한 벽면과 홑처마의 맞배지붕, 수를 줄인 최소한의 창호와 3량가의 가구구성 등에서 조선 시대 제사건축의 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삼문(神三門)은 기록상 대성전이 중건되는 1602년(선조 35)에 함께 중건되었다고 확인되는 경주향교 제향영역의 오래된 건축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가 맞배집으로 평삼문의 형식과 문짝, 문얼굴(문짝을 달기 위한 방형 문틀), 홍살(붉은색 주칠을 한 세로살대) 등의 세부 형식에서 향교 제향 공간의 신문(神門)으로서의 역사적 모범이 될 만하다. 특히, 문지방으로 사용되는 하인방의 하부에 신방목과 신방석(문을 구성하는 좌우 기둥 하부에 가로로 끼어낸 나무와 이를 받치는 돌)이 남아 있는 것이 구조적으로 특이한 점인데, 이러한 특징은 대성전에서도 발견되며 신라시대의 수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경주 향교가 조선 성종(成宗) 23년(1492)에 경주부윤(慶州府尹) 최응현(崔應賢)이 서울의 성균관을 본 떠 고쳐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선조 37년(1604)에 경주부윤(慶州府尹) 윤성(尹惺)이 동무(東廡)·서무(西廡)를 중건 이래 1829년, 1995년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성전과 함께 경주 향교의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건축물이다. 초석과 대공의 형태 등에서 17세기 중건 시의 건축 상황과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