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21. 12. 25. 15:26

동경

울진 불영사 불연 보물2127호

소 재 지;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하원리 120) 불영사

「울진 불영사(佛影寺) 불연(佛輦)」은 2채의 불연(佛輦)이 있는데, 매년 석가탄신일때 아기부처를 모시고 경내를 도는 시련의식(侍輦儀式)을 행하고 있으며, 이때 이 불연(佛輦)을 사용하고 있다. 불연(佛輦)은 가마의 일종으로 왕실에서 사용하는 ‘연’이나 ‘덩’과 비슷한 것으로, 불연(佛輦)은 불가(佛家)의 불보살상(佛菩薩像), 사리(舍利), 경전, 불패(佛牌, 불보살의 존호나 발원내용을 적은 나무패), 영가(靈駕, 불가에서 망자를 뜻하는 말) 등 예배의 대상을 가마에 싣고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모셔오는 시련의식(侍輦儀式)에서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식법구다. 시련(侍輦)은 가마를 문밖까지 메고 나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이나 재(齋)를 받을 대상인 영가 등을 가마에 모시고 여러 가지 위의(威儀)를 갖추어 법회장소(도량)까지 행렬을 지어 오는 불교의식으로 이때 불연(佛輦)이 사용된다. 불연(佛輦) 1의 받침대 하부에는 조연기(造輦記)가, 불연(佛輦) 2의 받침대 하부에는 시주질이 묵서되어 있는데, 이 명문들에 의해 불연(佛輦)의 제작시기와 제작동기, 공역에 참가한 시주자와 승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불연(佛輦) 1의 크기는 높이 125 × 난간폭 86 × 길이 311cm이며, 불연(佛輦) 2는 높이 125 × 난간폭 80 × 길이 303cm이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나간을 두른 집모양으로 받침대, 몸체, 지붕으로 분리되게 조립하였다. 받침대는 누각의 난간과 같은 형태이며, 앞뒤에 두개씩의 손잡이를 만들었고 난간 모서리에는 용머리를 각각 장식하였다. 몸체는 창이 있는 벽체를 돌렸으며, 벽체에는 화려하게 여러 가지 꽃을 조각하였다. 지붕은 녹색비단으로 처리하였으며, 상부에는 연봉을 세워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울진 불영사(佛影寺) 불연(佛輦)’은 1670년(현종 11) 화원(畵員)으로 추정되는 광현(廣玄), 성열(性悅), 덕진(德眞) 등이 참여해 조성한 2기의 불교의례용 가마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약 20기의 조선 후기 불연(佛輦, 가마)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사례다. 불교목공예의 일종인 불연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불연은 모두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반면 ‘울진 불영사(佛影寺) 불연(佛輦)’은 2기 모두 1670년이라는 분명한 연대와 승려 화주(化主) 학종(學宗)이 좋은 장인을 만나 불연을 제작하게 된 배경, 제작에 동참한 시주자, 불연의 제작자로 추정되는 스님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균형미를 갖추었고 나무로 얽어 만든 둥근 궁륭형(穹窿形, 활이나 무지개처럼 둥글게 굽은 형상) 지붕과 네 귀퉁이의 봉황조각, 난간의 용머리 장식, 가마의 몸체 전면에 표현된 연꽃, 국화, 화초 장식 등에서 보이는 조형미와 조각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특히, 불연(佛輦)의 몸체 주렴(珠簾, 구슬 등을 꿰어서 만든 발)에 동경(銅鏡, 청동거울)을 매단 최초의 사례로,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되는 양면원경(兩面圓鏡)이나 불화의 복장낭(腹藏囊) 앞에 매단 동경(銅鏡) 처럼 어둠을 밝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징으로 추정된다. ‘울진 불영사(佛影寺) 불연(佛輦)’은 조선 후기 불연 중 제작 당시의 온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제작배경을 상세히 담은 명문이 남아 있는 점, 공예기술 면에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불영사(佛影寺) 칠성각 불연의 받침대 밑면에는 불영사조연기(佛影寺造輦記)와 시주질 및 연화질, 불영사(佛影寺) 황화실 불연의 받침대 밑면에는 시주질(施主秩)과 사내질(寺內秩)이 묵서로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연사 칠성각 불연; 불영사조연기〉
삼가 봉연(鳳輦)이라 하는 것은 법회를 열 때 수많은 부처들이 올라앉아 궁전으로 내림(來臨)하던 것이라. 그러나 어찌 한갓 그러한 것이기만 하랴. 항차 난봉(鸞鳳)이 꿈틀대며 난간 중에 날아오르고, 황룡(黃龍)이 용솟음치며 청련(靑蓮) 위로 솟아오르며, 십이진금(十二眞金)으로 벽을 장식하고, 칠보명주로 지붕을 얽고, 둥그런 명월과 같은 거울이 앞뒤로 걸려 있으며, 수놓은 작은 문을 열면 운영(雲影)이 누각에 내리고, 작은 보석으로 장식한 창을 열면 일월이 궁전을 비추는 것 같음이랴. 위대하고 장함이요, 찬연히 빛남이로다.
세상에 이 물건을 만든 자가 누구인가. 학종선덕(學宗禪德)이 바로 이것이로다. 무신년 가을에 소매 속에 옥축(玉軸)을 갈무리하고 길을 떠나 경상도 울산부에 이르렀다. 온갖 마을에 바람이 거세고 구름이 젖어들거늘 적선지가(積善之家)의 선연(善緣)을 맺게 하고, 홍공(鴻功)을 이루고자 했지만 좋은 장인을 만나지 못해 한세월을 그냥 보냈다. 기유년 봄에 홀연히 좋은 장인을 만났으니, 그때 마침 춘북령 원적산 대승암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공업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경술년 봄에 결단을 내려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는 가히 사람의 소치가 아니라 하늘이 하는 바라. 옛날에 이르기를 대운(大運)이 도와 두루 미치지 못하면 정성만 거듭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러니, 이는 덕을 쌓고 능히 베푼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삼가 원컨대 불연을 조상한 후에 귀신이 용을 호위하여 하늘에서 지키고, 삼재(三灾)와 오해(五害)가 모두 끊어져 들어오지 못하며, 육시(六時)와 천락(天樂)이 무성하게 절로 내림하여 불일(佛日)이 거듭 빛나고, 선풍(禪風)이 다시 떨치게 하소서(佛影寺造輦記 伏以鳳輦者 修說法席之時 恒沙諸佛昇坐來臨之宮殿也 豈徒然哉 而況鸞鳳辮飛於畵欄之中 黃龍玄湧於靑蓮之上 十二眞金爲壁 七宝明珠爲戶 金絲蛾蝶之結 而垂垂於四隅 團團明月之鏡 懸懸于前後 綉闥開 而雲影臨軒 瑱窓啓 而日月照宮 偉哉壯哉 赫赫乎也 世此物成之者阿誰耶 學宗禪德是也 戊申之秋 袖藏玉軸 而行至慶尙道蔚山府也 風飄雲衲於萬落千村 而募緣積善之家 欲成鴻功 而良工不遇 空負一歲也 己酉之春 忽遇良工 而向入宜春北嶺圓寂山大乘庵 始成矣 未斷功 而庚戌之春 以斷功 而結手也 可謂非人之所致 乃天之所爲也 古云天運循環無往 不復誠 可謂此也 此非積德能施者也 伏願造輦之後鬼神攸護龍天守 伏三灾五害絶歷 而入不六時 天樂繽紛 而自來重暉佛日 再振禪風云)
시주질, 경상도 양산 공양보시주 박수억 9월 양주, 울산 공양시주 김춘산 양주 공양시주 이림(施主秩 慶尙道梁山地 供養布施主朴守億 九月 兩主 蔚山地 供養施主金春山兩主 供養施主李林)
연화질, 광현비구 성열비구 덕진비구 공양주, 능간비구 기민보체, 화주 학종비구, 인권대덕 혜능대사비구. 기유년에 시작하여 경술년 4월에 완성함. 강희 9년 경술 4월에 공력을 마침.(緣化秩 廣玄比丘 性悅比丘 德眞比丘 供養主 能簡比丘 己敏保体 化主學宗比丘 引勸大德 惠能大師比丘 己酉年爲始庚戌年四月畢造 康熙九年庚戌四月畢功)
〈불연사 황화실 불연: 받침대 밑면 묵서〉
시주질, 울산공양대시주 한귀남양주, 울산 정계상양주, 울산 허해립양주, 울진 남계목양주, 울산애령보체.(施主秩 蔚山供養大施主韓貴男兩主 蔚山鄭戒上兩主 蔚山許海立兩主 蔚珍南戒目兩主 蔚山愛令保体)
사내질, 지순, 태경, 도은, 해임, 법현, 경욱, 성주, 성진, 수승 탁륜, 삼보 사철, 화주 학종. 강희 9년 경술 4월 일 마침.(寺內秩 智淳 太敬 道訔 海稔 法玄 敬旭 性珠 性眞 首僧卓倫 三宝思哲 化主學宗 康熙九年庚戌四月日畢)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