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0882@hanmail.net 2022. 3. 21. 08:27

상주 남장사 감로도

 

선망부모 극락왕생…지극한 불공 교훈담은 불화

음식공양·스님들의 의식으로
지옥 선망부모 이고득락하고

불·보살이 내려준 감로 마신
육도중생은 윤회 업장 ‘소멸’
극락천도 모습 실감나게 묘사

감로도 친견하며 홀연히 가신
가까운 분 극락왕생 빌고 싶어

상주 남장사는 경상북도 팔경(八景)의 하나로 알려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오솔길 같은 진입로를 따라 사찰로 들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오르다 보면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온다.

남장사에는 그림의 형태가 아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조각으로 후불화의 기능을 하고 있는 목탱이 보광전과 관음선원 두 전각에 봉안되어 있다. 모두 아미타여래설법상을 모시고 있는데, 진귀한 목탱이 이렇게 두 곳에 봉안된 것은 남장사가 유일하다. 또한 보광전에는 비로자나철불좌상이 주불로 모셔져 있는데, 이 부처님이 땀을 흘리면 병란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면서 영험함이 널리 알려져 있다.

상주 남장사 감로도(250×336㎝, 견본채색, 보물). 지극한 공양과 의식을 통해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 선망부모를 극락왕생하게 한다는 이야기와 교훈을 담은 불화이다.

영혼천도재 의식 때 거는 불화
오늘 소개할 성보는 바로 ‘남장사 감로도(南長寺 甘露圖)이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영가(靈駕)를 극락정토로 이끄는 여러 재(齋) 의식을 행하고 있다. 수륙재(水陸齋)·칠칠재(七七齋)·우란분재(盂蘭盆齋) 등이 바로 영혼천도재 의식인데, 이러한 의식을 행할 때 걸기 위해 조성한 불화가 감로도이다. 현재 전해오는 감로도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남장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감로도는 18세기에 들어서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화(1701년 작)로, 화면의 구성과 선의 활달함, 아름다운 색채감을 갖고 있는 뛰어난 불화로 평가된다.

감로도는 수륙재와 우란분재와 관련된 경전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우란분경>의 내용은 부처님 제자 중 가장 신통력이 뛰어난 목련존자(目連尊者)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과 아귀도(餓鬼道)에서 고통받는 것을 구제하고자, 수행하는 스님들이 참회하는 날(自恣日)인 음력 7월15일 백중(百中)에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 등으로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면 마침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원하였다는 내용이다.

공양 의식으로 극락왕생 기원
감로도는 이야기와 교훈을 담은 불화이다. 우란분재의 성반(盛飯, 공양을 올리는 음식)과 스님들이 올리는 의식을 통해 부모가 지옥의 고통을 여의고 극락에 왕생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육도(六道)의 중생들이 상단에 있는 불·보살이 내려준 감로(甘露)를 마시고 윤회의 업장이 소멸되어 극락으로 천도된다는 내용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불화는 상단과 중단, 그리고 하단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감로도의 전형적인 구도이다. 화면의 제일 위에는 일곱 여래와 보살들이 등장하고, 중앙에는 아귀에게 시식의례를 베푸는 스님들이 의식작법 하는 모습, 그리고 하단에는 천도의 대상인 중생들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아래 하단부터 살펴보자. 하단은 육도윤회를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중앙에 전쟁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말을 탄 무사들이 조총과 활을 겨누고 싸움을 하는 장면을 그렸다. 전쟁 장면의 양옆으로는 확탕지옥(鑊湯地獄) 등 지옥의 무서운 장면과 이를 구제하기 위한 지장보살도 등장한다. 우물에 빠져 죽는 장면과 뱀이나 호랑이에 물려 죽는 장면, 담이 무너져 죽는 장면,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 등 육도제난(六道諸難)이 그려졌다. 감로도의 하단은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일반 풍속화의 성격도 가미되었다.

중단에는 커다란 의식단에 오곡백과와 꽃으로 장식된 시식대(施食臺)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오른쪽 구석에는 불을 뿜고 있는 한 쌍의 아귀(餓鬼)를 아주 작게 묘사했다. 배가 산처럼 큰 아귀는 목은 가늘고 길게 생겼다. 그래서 늘 배가 고파 괴로워하는 아귀에게 감로(甘露)를 뿌려 이 고통에서 구원한다는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시식대 아래에는 유족들이 조상에게 절하며 재를 올리는 모습과 스님들이 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상세하게 표현했다.

시식대와 의식 장면, 아귀 등은 연한 녹색의 구름으로 구획이 나뉘었다. 그 좌우에 일렬로 4층의 도식적인 구름으로 단을 구획한 후 법회에 참여한 스님들과 고관대작부터 여인네에 이르기까지 법회에 참여한 다양한 군중을 규칙적으로 배열됐다.

맨 윗부분에는 수묵산수화 기법으로 그려진 험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중심에 일곱 여래가 서 계신다. 일곱 여래 위로는 오색의 찬란한 빛이 뻗어나 있다. 왼쪽(향우)로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영(來迎)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 맞은편에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인로왕보살이 번(幡)을 든 지옥의 중생들을 데려가고 있다. 이들이 인도하는 곳은 아미타여래가 계신 극락이다.

이처럼 감로도는 화면의 제일 하단에 현실의 고통과 지옥의 세계에 빠진 중생들을 중단에 베풀어진 성반과 의식을 통해 상단인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감로도는 이와 비슷한 구성을 보이고 있지만, 작가와 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화를 준다. 예를 들면 중단에 성반의식(盛飯儀式)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으며, 아귀가 한 구, 혹은 한 쌍이 작게, 혹은 화면 중앙에 크게 나타나는 등 불화의 구성에서 시대마다 유행하는 양식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됐다. 그리고 불화의 하단부에 등장하는 현실과 지옥세계는 보다 자유롭게 표현되는 공간이다. 불화를 그릴 당시의 현실을 그린 장면이 많아, 당시의 풍속 등이 반영된 재미있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단의 의식작법을 확대한 모습.

극락내영·성반의식 한 폭에…
남장사 감로도는 극락내영과 성반의식 장면을 한 폭에 갖춘 대표적인 감로도라 할 수 있다. 이 불화는 1701년 탁휘(卓輝) 등의 여러 스님들이 그린 감로도로 18세기의 감로도 가운데 조성 시기가 빠르다. 또한 각 장면 옆에는 묵서로 장면의 제목을 적어서 그린 내용을 밝혀주어 감로도의 도상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각 장면의 인물들이 섞이지 않도록 노란색, 연두색, 분홍색 등의 구름모양으로 이야기별로 구획을 나누었다.

이 불화는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크고 작게 배치하여 구성이 안정적이다. 치밀하고 세련된 선의 표현에서 예술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화에서 색감은 밝은 적·녹·황색을 주조색으로 처리하였고, 구름과 불보살의 대좌와 바탕에는 파스텔톤의 다양한 색으로 밝고 화사하게 채색했다. 그래서 탁하고 진한 색채감을 보이는 18세기 후기에 그려진 불화와는 다르게 18세기 전기 불화의 독특한 색감을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색채로 화면 전체가 생기 있어 보이며, 금을 많이 사용하여 한편으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조성 당시 테두리까지 그대로
그리고 무엇보다 ‘상주 남장사 감로도’는 불화를 처음 그렸을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불화로서 중요하다. 대부분의 불화는 보존처리를 하면서 그림의 테두리인 장황부분을 잘라버리고 새로 한 것이 많다. 이 불화는 장황된 부분까지도 본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불화의 테두리를 녹색 바탕 위에 무늬를 그려 넣었는데, 상단에는 보상당초문, 하단에는 연화당초문을 그려 두 가지 꽃무늬를 복합적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불화 좌우 테두리 붉은 원안에 금으로 장식무늬처럼 진언을 써넣어 이 불화의 의례적인 성격을 반영했다.

상주 남장사를 처음 갔을 때 보광전 앞에 자리하고 있던 커다란 파초가 인상적이었다. 남장사는 관음선원이 있는 절로 파초와 수행공간이 너무 잘 어울렸다. 겨울이 오기 전 기회가 된다면 상주 남장사 감로도를 친견하면서 홀연히 가신 가까운 분들을 위해 극락왕생을 기원해 보고 싶다.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불교중앙박물관 팀장 [불교신문36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