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서울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북한산 복지도량’ 지키는 원만상호 돌부처님
뭇 중생들 속진번뇌 내려놓고
기도하는 도량 넓은 바위에
자비부처님 천년 넘게 자리해
마애불 설명 사진 까치 세 마리
‘불법승(佛法僧)’ 삼보 상징하듯 ‘인상적'
북한산 삼천사 경내 대웅전 위쪽에 가로 30여m 병풍바위에 자비로운 부처님이 천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연서로 54길 127. 북한산 삼천사 경내 대웅전 위쪽 가로 30여m 병풍바위에 부처님이 나투어 계신다. 뭇 중생들이 속진번뇌를 내려놓고 기도하는 넓은 도량 바위에 아로새겨진 자비로운 부처님이 천년 넘게 자리하고 있다.
삼천사는 복지도량이다. 일찍이 주지로 부임한 성운스님이 지역 사회복지에 눈을 떠 노인복지관을 비롯해 어린이집과 노인종합복지관, 도서관, 노인요양시설 등 다양한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은평구 복지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사찰이 진즉 사회복지에 기여하고는 있었지만 시스템을 갖추지는 않았는데 삼천사는 1990년대부터 노인복지관을 수탁운영하며 지역사회 복지에 앞장서는 모범을 보여 왔다. 사찰이 지역복지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를 삼천사는 다른 사찰의 롤모델이 되었다. 지역 사회복지와 연계한 활동으로 사찰은 자연스럽게 지역민의 귀의처가 되어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그 모습을 마애부처님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며칠 앞둔 3월2일 찾아간 삼천사는 적요(寂寥)했다. 마스크를 하고 사찰을 찾은 기도객과 등산객들이 경내에 드문드문 보였다. 법당에서 울려퍼지는 목탁소리가 북한산 삼천사 계곡에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아직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이 봄의 기운을 밀어내고 있지만 양지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계절의 균형추를 기울게 한다.
경내에 설치돼 있는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에 대한 설명은 우선 이 부처님이 보물이라는데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다. ‘대한민국 보물 657호’라는 문구가 맨 앞에 자리하고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초기 조성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3.02m, 불상 높이는 2.6m에 달한다. 고려시대 불상 중 대표적인 하나로 평가된다. 얼굴과 윗몸을 돋을새김 하였으며 하반신과 광배 그리고 대좌는 볼록한 선새김으로 마치 강한 선묘화(線描畵)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삼천사에서 제공받은 마애부처님 모습으로 까치 세 마리가 이채롭다.
마애불 좌우 벽면에는 가구공(架構孔)이 파여 있는데 여기에 목재를 끼워 전각을 조성해 보존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가파른 계곡에 옹기종기 들어선 전각이 전통사찰의 품격을 잘 유지해 주고 있지만 험준한 북한산 계곡에 이러한 건물이 들어서기까지는 상당한 원력이 켜켜이 쌓여야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덕무가 쓴 <기유북한(記遊北漢)>에 따르면 삼천사는 고려시대 3000여 스님이 살아, 삼천사 인근 계곡을 ‘삼천승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집결했던 장소로, 전화로 소실되기도 했다고 한다.
바위산 계곡에 사역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자연재해를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역사의 질곡에 삼천사 역시 병화를 피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이 밀려왔어도 바위에 스며들어 있었던 부처님의 형상은 천년의 세월동안 풍파를 이겨내고 자애로운 미소로 만 중생을 보듬어 오지 않았던가.
마애부처님에 대한 설명을 더 살펴본다. “머리광배(頭光)는 겹둥근 무늬로 소발(素髮, 흰 머리카락)한 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솟아 있다. 살짝 뜬 눈은 눈꼬리가 귀 가까이 닿았으며, 두툼한 코와 연속된 양 눈썹 사이에는 작은 백호공(白豪孔)이 뚫려 있다. 신광(身光)은 한 줄로 새겼다. 신체는 비교적 장신이지만 비례가 자연스러우며, 옷차림을 보면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통견의이나 넓게 ‘U’자 모양으로 트인 가슴에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비스듬히 걸친 내의와 띠대들이 보인다.”
얼굴모습과 몸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한 글을 읽는 도중에 눈에 띄는 것은 ‘마애부처님’ 사진 앞에 날갯짓하고 있는 까치 세 마리의 모습이다. 사찰에서 기증받았다고 하는 마애불 사진은 실제 마애불 모습보다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촬영한 시간이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 늦은 시간으로 추측된다. 세 마리의 까치가 마치 불교에서 상징하는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의미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마애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가 오랜 세월동안 삼천사에 이어내려와 현재의 삼천사를 있게 했다는 상징처럼 이해가 된다.
마애부처님의 옷은 다소 두껍게 표현해 포근한 느낌을 전해 준다. 거기에 어울리게 손모양도 두툼하다. 마애부처님 설명을 더 살펴본다.
“수인을 살펴보면 오른손은 내려뜨려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있으며, 왼손은 배 앞쪽으로 무엇을 가볍게 받들어 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발 밑의 대좌는 연꽃잎이 위쪽으로 피어난 앙련의 연화좌이며, 꽃잎은 단판 중엽이고, 꽃잎 사이에는 간엽이 표현되어 있다. 조성된 바위 위에는 또 다른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어 마치 불상의 보개(寶蓋, 보물스런 덮개)처럼 보인다.”
마애불 옆 전각은 산신각이고 그 아래는 나한전이 조성돼 다양한 모습의 나한님이 봉안돼 있다. 나한전으로 눈길을 돌리는 바위 틈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솔씨 한 톨이 싹을 틔워 제법 모양을 형성하며 자라고 있다. 척박한 바위 틈에서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며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며 성장할 있었을까. 참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일어난다.
자연석을 덮개로 천년 세월을 지키고 있는 삼천사 마애부처님.
기도객을 위해 사찰 측에서 목재로 마룻바닥을 조성해 놓았고, 절을 할 수 있도록 쿠션이 있는 방석도 구비해 놓았다. 정성을 담아 마애부처님 전에 거룩한 마음으로 삼배의 예를 올려본다. 북한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알싸한 바람이 마스크를 한 얼굴을 스치고 코끝으로 기운이 스며든다. 원만한 상호를 우러러보니 그 모습이 삼천사 주지 성운스님의 모습과 닮아 있다. 숙세의 인연으로 환생을 거듭한 모습으로 나툰 게 아닌가 상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지 성운스님의 복지원력 역시 마애부처님의 원만한 상호에서 유래되었을 개연성이 든다. 주지 스님의 상좌로 40여년 간 문서포교를 해 온 동출스님 역시 삼천사 마애부처님을 닮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도객 2명이 마애불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어떤 발원을 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간절해 보인다. 일배 일배를 올리는 합장의 손끝이 봄햇살에 일렁인다. 그의 발원성취를 뒷발치서 기원해 본다.
사진=손묵광 사진작가 글=여태동 기자 [불교신문37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