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고려사

세가(世家) 선종(宣宗) 원년

7390882@hanmail.net 2023. 10. 13. 18:32

선종(宣宗) 원년

 

〈선종〉 (갑자) 원년(1084) 봄 정월 신축. 초하루 신년하례를 생략하였다.

기사. 보제사(普濟寺) 승려 정쌍(貞雙) 등이 아뢰기를,

“9개 산문(山門)의 참학승도(叅學僧徒)를 진사(進士)를 선발하는 예에 따라서 3년에 1회 선발하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3월 경자. 초하루 동여진(東女眞)의 장군 분나로(分那老) 등 20인이 와서 말을 바쳤다.

여름 4월 요(遼)에서 칙제사(勑祭使)로 익주관내관찰사(益州管內觀察使) 야율신(耶律信)을 보냈고, 위문사(慰問使)로 광주관내관찰사(廣州管內觀察使) 야율언(耶律彦) 등이 왔다.

갑술. 〈요(遼) 사신들이〉 문종(文宗)에게 제사 지내며 제문(祭文)에서 말하기를,
“생각하건대 〈문종은〉 예의의 단초를 마음으로 극진히 하였으며, 중화(中和)의 순수함을 체득하고 포용하였습니다. 왕이 귀한 작위를 주어 일찍부터 청사(靑社)의 봉토를 이어받았으며, 목신(木神)이 인자하여 동방의 기운을 부여받았습니다. 충성과 정성을 가슴에 품어 힘써 실행하고, 직분을 다하여 공물을 바치는 의례가 해마다 이르렀습니다. 천자(天子)를 보좌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여 조정에서는 그 공훈에 의지하였고, 천리의 번방(藩邦)으로 생민(生民)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제 막 손을 잡고 올바른 통치를 이루려 하였는데, 어찌 하늘[上天]이 남겨주지 않은 뜻이겠습니까? 부음을 듣고 슬퍼하여 조회를 정치하고 거듭 탄식하였습니다. 오호! 세월은 머무르지 않고 인생은 잠시 머무는 것이어서 1,000년의 시운(時運)으로 만나 50년 동안 군신(君臣)으로 의리를 지켰는데, 갑자기 죽었으니[藏夜壑之舟] 조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마땅히 빨리 제문을 보내 가서 전례(奠禮)에 이르도록 하니, 영혼이 만약 알게 된다면 나의 지극한 뜻을 흠향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정축. 〈요(遼) 사신들이〉 순종(順宗)에게 제사 지내며 제문(祭文)에서 말하기를,
“생각하건대 〈순종은〉 신상(辰象)의 순수한 정기와 악독(嶽瀆)의 빼어난 기운으로, 경사스럽게도 나라를 이어받았고 왕으로서의 재주도 갖추었습니다. 비로소 영묘(英妙)한 나이로부터 이에 천자(天子)로부터 명을 받아, 일역(日域)에 책봉되어 자신의 맡은 일을 다 하였습니다. 나라 일을 보좌하는 데 성실하였고 백성을 잘 다스려 이제 막 칭번(稱藩)의 공적을 쌓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친의 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탈정기복(奪情起復)을 의논하여 그 지위를 이어받기로 하여 지시하여 황제의 사신이 이미 출발하였는데, 역참에서 부음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어진이가 죽었음에 탄식하고 놀라며 슬퍼함이 더하였습니다. 어찌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갑자기 죽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애통하게 합니까? 그대의 충성스러움을 생각하고 그대의 풍모를 짐작해 보며, 친히 사절을 보내 가서 전(奠)에 술잔을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명신(冥神)이 이것을 안다면 나의 깊은 뜻을 헤아려 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5월 임술. 고민익(高旻翼) 등을 급제시켰다.

6월 임오. 동여진(東女眞)이 흥해군(興海郡) 모산진(母山津)의 농장을 노략질하자, 수졸(戍卒)이 그들을 격파하고 5인을 사로잡았다.

무자. 일본국(日本國) 축전주(筑前州)의 상객(商客) 신통(信通) 등이 수은(水銀) 250근을 바쳤다.

을미. 연화궁(延和宮)에서 왕자가 태어났다.

가을 8월 임신.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현종(顯宗)이 남쪽으로 행차하였을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박성걸(朴成傑)이 호종(扈從)한 공로가 있으니,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 양규(楊規) 등의 녹권(錄券)에 함께 기록하여 시행하라.”
라고 하였다.

갑신. 송(宋)에서 제전사(祭奠使)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양경략(楊景略)과 부사(副使) 예빈사(禮賓使) 왕걸봉(王舜封), 조위사(弔慰使)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전협(錢勰)과 부사(副使) 서상합문부사(西上閤門副使) 송구(宋球) 등을 보내 왔다.

신묘. 〈송(宋)〉 제전사(祭奠使)가 승도(僧徒)를 모아서 문종(文宗)의 혼전(魂殿)에서 3일 밤낮동안 도량(道場)을 열었다.

임신. 〈송(宋) 제전사(祭奠使)가〉 또 순종(順宗)의 혼당(魂堂)에서 〈도량을〉 열었다.

계사. 문종(文宗)에게 제사지내며 축문(祝文)에 이르기를,
“생각해보니 왕은 경저(慶緖)를 이어받아 제후의 봉토를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인도하여 풍속을 바로하고 예의를 으뜸으로 하였다. 한결같이 조정에 충성하였고, 조공 바치는 일에 더욱 공손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만리의 바다를 일엽편주(一葉片舟)로 통하였으니, 정성에 감응하여 바람과 물결도 순종하였다. 우리 중국은 사해(四海)에서 모두 모이는 곳이나, 공덕을 견주어 덕으로 추모한다면 누가 왕종(王宗)에 견줄 수 있겠는가? 마땅히 아비보다 오래 살아 동쪽의 번병(藩屛)이 되리라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상심하고 슬퍼함에 끝이 있겠는가? 사신을 보내 전(奠)을 올리는 것으로 나의 충심(衷心)을 보인다.”
라고 하였다.
조서(詔書)에서 말하기를,
“아버지와 형의 상(喪)은 인륜에서도 가장 큰 슬픔이므로, 부의를 보내는 예는 조정에서 지극한 은혜이다. 공손하고 순종하는 번국이었으니 애영(哀榮)의 전례(典禮)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특별히 빨리 사신을 보내 부의를 올리는 것으로, 간곡한 마음을 보이고 애통한 마음을 위로하려고 한다.”
라고 하였다.
그 조문하는 편지에 이르기를,
“불의의 흉사를 당하여 갑자기 아버지[所怙]를 잃고 다시 동복(同腹)의 형제도 잃었다고 들었는데, 아프고 괴로움이 거듭되고 있어 어찌 이기고 있는가? 내가 들은 것으로 보면 진실로 측은하고 아프다. 경(卿)은 아버지와 형을 계승하여 본디부터 효성과 우애를 갖추어 침착하게 억누르고 나의 관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위로하며, 아울러 그대에게 조문하는 물색(物色)을 갖추어 따로 기록하여 보내니 이르는 대로 받으라.”
라고 하였다.

갑오. 순종(順宗)에게 제사하며 이르기를,
“생각하건대 왕은 자질이 빼어나고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믿음을 이행하고 순응을 생각하며 덕성(德聲)이 아름다웠습니다. 상례(喪禮)를 치르는 것에는 예(禮)에 맞게 하고, 나라를 다스림에는 백성의 뜻에 부합하였습니다. 큰 행복을 받아 그 안녕과 영광을 보존하면서 우리의 울타리[屛翰]가 되어서 조정을 돕고 받들 것이었는데, 무슨 불행이 있어서 갑자가 병이 심해졌단 말입니까? 생각하건대 하늘은 저울이 물건을 평형하게 하는 것처럼 베풀어 은혜를 갚는다고 하였는데, 선행을 쌓고도 그 나이에 요절하리라고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의 사신에게 이르도록 신칙하여, 이에 그 행차를 서둘러서 소박한 전(奠)을 올려 나의 정성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라고 하였다.

왕의 생일을 천원절(天元節)로 정하였다.

9월 기해. 송(宋) 사신들에게 회경전(會慶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임인. 〈송(宋) 사신들에게〉 또 잔치를 베풀었다

갑진. 〈송(宋) 사신에게〉 송별연을 열고, 돌아가는 길에 왕이 사례하는 표문(表文)을 부쳤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