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10권(券第十) 신라본기(新羅本紀) 희강왕(僖康王)

7390882@hanmail.net 2019. 12. 11. 17:50

희강왕(僖康王)


희강왕(僖康王)이 즉위하니, 휘는 제륭(悌隆) 또는 제옹(悌顒)이고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손자 이찬(伊湌) 헌정(憲貞) 또는 초노(草奴)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포도부인(包道夫人)이고 비는 문목부인(文穆夫人)이니, 갈문왕(葛文王) 충공(忠恭)의 딸이다. 앞서 흥덕왕(興德王)이 돌아가시자, 그 사촌동생 균정(均貞)과 사촌동생의 아들 제륭(悌隆)이 모두 임금이 되고 싶어 했다. 이에 시중(侍中) 김명(金明)과 아찬(阿湌) 이홍(利弘), 배훤백(裵萱伯) 등이 제륭(悌隆)을 받들고, 아찬(阿湌) 우징(祐徵)은 조카 예징(禮徵)김양(金陽)과 아버지 균정(均貞)을 받들어, 일시에 대내(大內)에 들어가 서로 싸웠다. 김양(金陽)이 화살을 맞아 우징(祐徵) 등과 함께 도망치고 균정(均貞)은 해를 당하니, 그 후에 제륭(悌隆)이 즉위한 것이다.

2년(837년) 봄 정월에 대사면을 하여 참수형 이하의 죄수를 풀어주었다.

아버지를 추봉(追封)하여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삼고, 어머니 박씨(朴氏)를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삼았다.

시중(侍中) 김명(金明)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삼고, 아찬(阿湌) 이홍(利弘)을 시중(侍中)으로 삼았다.

여름 4월에 문종(文宗)이 숙위(宿衛) 왕자 김의종(金義琮)을 돌려보냈다.

아찬(阿湌) 우징(祐徵)이 아버지 균정(均貞)이 해를 당한 것 때문에 원망의 말을 하니, 김명(金明)과 이홍(利弘)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5월에 우징(祐徵)이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처자식과 함께 황산진구(黃山津口)로 달아나, 배를 타고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궁복(弓福)에게 가서 의탁하였다.

6월에 균정(均貞)의 매제인 아찬(阿湌) 예징(禮徵)과 아찬(阿湌) 양순(良順)이 도망하여 우징(祐徵)에게 의탁하였다.

당(唐) 문종(文宗)이 숙위(宿衛) 김충신(金忠信) 등에게 차등을 두어 비단을 하사하였다.

3년(838년) 봄 정월에 상대등(上大等) 김명(金明), 시중(侍中) 이홍(利弘) 등이 군사를 일으켜 난을 꾸며서 왕의 측근들을 해치니, 왕은 자신이 온전치 못할 것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맸다. 시호(諡號)를 희강(僖康)이라 하고 소산(蘇山)에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