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2권(券第二) 신라본기(新羅本紀) 미추(味鄒) 이사금(尼師今)

7390882@hanmail.net 2019. 10. 7. 09:13

미추(味鄒) 이사금(尼師今)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또는 미조(味照)라고도 하였다. 성은 김(金)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로 갈문왕(葛文王) 이칠(伊柒)의 딸이다. 왕비는 석씨(昔氏) 광명부인(光明夫人)으로 조분왕(助賁王)의 딸이다. 그의 선조 알지(閼智)가 계림(鷄林)에서 태어나 탈해왕(脫解王)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나중에 대보(大輔)로 삼았다. 알지(閼智)세한(勢漢)을 낳았고, 세한(勢漢)아도(阿道)를 낳았고, 아도(阿道)수류(首留)를 낳았고, 수류(首留)욱보(郁甫)를 낳았고, 욱보(郁甫)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仇道)가 곧 미추(味鄒)의 아버지이다. 첨해(沾解)가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미추(味鄒)를 세웠다. 이것이 김씨(金氏)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원년(262) 봄 3월에 용이 궁 동쪽 연못에서 나타났다.

가을 7월에 금성(金城) 서문에 불이 나서 번져 민가 3백여 채가 불에 탔다.

2년(263) 봄 정월에 이찬(伊湌) 양부(良夫)를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중앙과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겸하여 맡도록 하였다.

2월에 몸소 국조묘(國祖廟)에 제사 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죽은 아버지 구도(仇道)를 갈문왕(葛文王)으로 봉하였다.

3년(264) 봄 2월에 동쪽으로 순행(巡幸)하여 바다를 보며 제사지냈다.

3월에 황산(黃山)에 행차해 나이 많은 사람과 가난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을 진휼하였다.

5년(266) 가을 8월에 백제가 봉산성(烽山城)을 공격해 왔다. 성주(城主) 직선(直宣)이 장사 2백 명을 거느리고 나가 그들을 공격하니 적이 패하여 달아났다. 왕이 그것을 듣고 직선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고 사졸들에게도 상을 후하게 내렸다.

7년(268)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자 군신들을 남당(南堂)에 모이게 해 친히 정치와 형벌 시행의 잘잘못을 물었다. 또한 사신 5명을 보내 두루 돌며 백성의 괴로움과 걱정거리를 물어보게 하였다.

11년(272) 봄 2월에 영을 내려 무릇 농사짓는 일에 해가 있으면 일체 그것을 없애라고 하였다.

가을 7월에 서리와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쳤다.

겨울 11월에 백제가 변경(邊)을 침략하였다.

15년(276) 봄 2월에 신료들이 궁실을 고쳐 짓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것이어서 따르지 않았다.

17년(278)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괴곡성(槐谷城)을 포위하자 파진찬(波珍湌) 정원(正源)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막게 하였다.

19년(280) 여름 4월에 가물어서 죄수의 정상을 살폈다.

20년(281) 봄 정월에 홍권(弘權)을 이찬(伊湌)으로 삼고 양질(良質)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았으며, 광겸(光謙)을 사찬(沙湌)으로 삼았다.

2월에 조묘(祖廟)에 배알하였다.

가을 9월에 양산(楊山) 서쪽에서 크게 사열(査閱)하였다.

22년(283) 가을 9월에 백제가 변경(邉)을 침략하였다.

겨울 10월에 괴곡성(槐谷城)을 포위하자 일길찬(一吉湌) 양질(良質)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막게 하였다.

23년(284) 봄 2월에 나라 서쪽의 여러 성을 돌아다니며 위로하였다.

겨울 10월에 왕이 죽어 대릉(大陵)에 장사지냈다. 또는 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