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2권(券第二) 신라본기(新羅本紀) 벌휴(伐休) 이사금(尼師今)

7390882@hanmail.net 2019. 10. 2. 11:08

벌휴(伐休) 이사금(尼師今)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또는 발휘(發暉)라고도 한다. 성은 석씨(昔氏)이다. 탈해왕(脫解王)의 아들인 각간(角干) 석구추(昔仇鄒)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金氏)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이다. 아달라(阿達羅)가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웠다. 왕은 바람과 구름을 점쳐 홍수와 가뭄, 그리고 그 해의 풍흉을 미리 알았다. 또 사람의 사악함과 정직함을 알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성인이라고 하였다.

2년(185) 봄 정월에 몸소 시조묘(始祖廟)에 제사 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2월에 파진찬(波珍湌) 구도(仇道)와 일길찬(一吉湌) 구수혜(仇須兮)를 좌·우 군주(軍主)로 삼아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 군주(軍主)의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3년(186) 봄 정월에 주(州)·군(郡)을 순행하며 풍속을 살펴보았다.

여름 5월 그믐 임진(壬辰)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7월에 남신현(南新縣)에서 상서로운 벼이삭(가화, 嘉禾)을 바쳤다.

4년(187) 봄 3월에 주(州)·군(郡)에 영을 내려 토목공사를 일으켜 농사의 시기를 뺏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겨울 10월에 북쪽 지방에 큰 눈이 와서 1장(丈)이나 쌓였다.

5년(188) 봄 2월에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해 와서 파진찬(波珍湌) 구도(仇道)에게 명하여 병사를 내어 막게 하였다.

6년(189) 가을 7월에 구도(仇道)가 백제와 구양(拘壤)에서 싸워 이겨서 5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7년(190) 가을 8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의 원산향(圓山鄕)을 습격했고, 또 진격해서 부곡성(缶谷城)을 포위했다. 구도(仇道)가 굳센 기병 5백 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니 백제 군사가 거짓으로 달아났다. 구도(仇道)가 쫓아가 와산(蛙山)에 이르렀다가 백제에 패하였다. 왕은 구도(仇道)가 실책했다고 해서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시키고 설지(薛支)를 좌군주(左軍主)로 삼았다.

8년(191) 가을 9월에 치우기(蚩尤旗)가 각(角)·항(亢)에 나타났다.

9년(192) 봄 정월에 국량(國良)을 아찬(阿湌)으로 삼고 술명(述明)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았다.

3월에 서울(경도, 京都)에 눈이 내려 3척(尺)이나 쌓였다.

여름 5월에 물난리가 크게 나 산 10여 곳이 무너졌다.

10년(193) 봄 정월 초하루 갑인(甲寅)에 일식이 있었다.

3월에 한기부(漢祇部)의 여자가 한 번에 4남 1녀를 낳았다.

6월에 인(倭人)이 크게 굶주려 먹을 것을 구하러 온 사람이 1천여 명이나 되었다.

11년(194) 여름 6월 그믐 을사(乙巳)에 일식이 있었다.

13년(196) 봄 2월에 궁실(宮室)을 중수하였다.

3월에 가물었다.

여름 4월에 궁 남쪽의 큰 나무에 벼락이 쳤다. 또 금성(金城) 동문에도 벼락이 쳤다.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