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2권(券第二) 신라본기(新羅本紀) 유례(儒禮) 이사금(尼師今)

7390882@hanmail.net 2019. 10. 9. 09:49

유례(儒禮) 이사금(尼師今)


유례이사금(儒禮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고기(古記)에는 제3대와 제14대 두 왕의 이름을 같이 유리(儒理) 또는 유례(儒禮)라고 하였으니 어느 것이 옳은 지 알 수 없다. 조분왕(助賁王)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로 갈문왕(葛文王) 나음(奈音)의 딸로, 일찍이 밤에 다니다가 별빛이 입에 들어와 그로 인해 임신하게 되었다. 태어난 날 저녁에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2년(285) 봄 정월에 시조묘(始祖廟)에 배알하였다.

2월에 이찬(伊湌) 홍권(弘權)을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기밀한 정무를 맡겼다.

3년(286) 봄 정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3월에 가물었다.

4년(287) 여름 4월에 인(倭人)이 일례부(一禮部)를 습격하여 불을 놓아 태우고 1천 명을 사로잡아 갔다.

6년(289) 여름 5월에 병(倭兵)이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와 노를 수리하고 갑옷과 무기를 손질하였다.

7년(290) 여름 5월에 큰 물난리가 나서 월성(月城)이 무너졌다.

8년(291) 봄 정월에 말구(末仇)를 이벌찬(伊伐湌)으로 삼았다. 말구(末仇)는 충성스럽고 곧으며 지략이 있어 왕이 항상 찾아가 정치의 중요한 점을 물어보았다.

9년(292) 여름 6월에 병(倭兵)이 사도성(沙道城)을 공격해 함락하자 일길찬(一吉湌) 대곡(大谷)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고 지키게 하였다.

가을 7월에 가물었고 누리(蝗)의 피해가 있었다.

10년(293) 봄 2월에 사도성(沙道城)을 고쳐 쌓고 사벌주(沙伐州)의 호민(豪民) 80여 가를 이주시켰다.

11년(294) 여름에 병(倭兵)이 장봉성(長峯城)을 공격해 왔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가을 7월에 다사군(多沙郡)에서 상서로운 벼이삭(가화, 嘉禾)을 바쳤다.

12년(295) 봄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인(倭人)이 자주 우리의 성읍(城邑)을 침범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가 없다. 나는 백제와 함께 도모해서 일시에 바다를 건너 그 나라에 들어가 공격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서불한(舒弗邯) 홍권(弘權)이 대답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은 물에서의 싸움은 익숙하지 않은데,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까지 가서 정벌한다면 뜻하지 않은 위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물며 백제는 거짓이 많고 항상 우리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또한 함께 도모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왕이 “옳다.”고 하였다.
14년(297) 봄 정월에 지량(智良)을 이찬(伊湌)으로 삼고 장흔(長昕)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사찬(沙湌)으로 삼았다. 옛 이서국(伊西國)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다. 우리 측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방어했으나 물리치지 못했다. 문득 이상한 군사들이 왔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사람들이 모두 대나무 잎을 꽂고 있었다. 우리 군사와 함께 적을 공격해 격파하였는데, 후에 어디로 간지를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이르기를
“선왕(先王)이 음병(陰兵)으로써 싸움을 도왔다.”고 했다.

15년(298) 봄 2월에 서울(경도, 京都)에 짙은 안개가 껴 사람을 분별할 수가 없었는데 5일 만에 걷혔다.

겨울 12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