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2권(券第二) 신라본기(新羅本紀) 첨해(沾解) 이사금(尼師今)

7390882@hanmail.net 2019. 10. 6. 09:08

첨해(沾解) 이사금(尼師今)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조분왕(助賁王)의 친동생이다.

원년(247) 가을 7월에 시조묘(始祖廟)에 배알하고 아버지 골정(骨正)세신갈문왕(世神葛文王)으로 봉하였다.

논하여 말한다.

(漢) 선제(宣帝)가 즉위하니 담당 관리가 아뢰었다.

“남의 뒤를 이은 사람은 그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부모를 낮추어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조종(祖宗)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황제의 생부를 친(親)이라 하고 시호를 도(悼)라 하며, 어머니는 도후(悼后)라고 하여 제후왕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경전의 뜻과 맞아 만세(萬世)의 법이 되었다. 그러므로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宋) 영종(英宗)은 이를 본받아 시행하였다. 신라 역시 왕의 친족 신분으로서 왕통을 이은 임금이 그 아버지를 받들어 봉하여 왕으로 칭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장인도 왕으로 봉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예에 맞지 않으므로 진실로 법도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2년(248) 봄 정월에 이찬(伊湌) 장훤(長萱)을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국정에 참여시켰다.

2월에 사신을 고구려에 보내 화친을 맺었다.

3년(249) 여름 4월에 인(倭人)이 서불한(舒弗邯) 우로(于老)를 죽였다.

가을 7월에 궁의 남쪽에 남당(南堂)을 지었다. 남당은 혹 도당(都堂)이라고도 한다. 양부(良夫)를 이찬(伊湌)으로 삼았다.

5년(251) 봄 정월에 처음으로 남당(南堂)에서 정무를 보았다. 한기부(漢祇部) 사람 부도(夫道)가 집이 가난했지만 아첨하는 바가 없고 글씨와 계산을 잘해 당시에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왕이 그를 불러 아찬(阿湌)으로 삼고 물장고(物藏庫)의 사무를 맡겼다.

7년(253) 여름 4월에 용이 궁의 동쪽 연못에 나타났다. 금성(金城) 남쪽에 누워있던 버드나무가 스스로 일어났다.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오지 않아 시조묘(始祖廟)와 명산에 빌며 제사지내니 곧 비가 왔다. 흉년이 들어 도적이 많았다.

9년(255) 가을 9월에 백제가 침입해 왔다. 일벌찬(一伐湌) 익종(翊宗)이 괴곡(槐谷)의 서쪽에서 맞아 싸우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겨울 10월에 백제가 봉산성(烽山城)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10년(256) 봄 3월에 나라 동쪽의 바다에서 큰 물고기 세 마리가 나왔는데 길이가 3장(丈)이고 높이가 1장 2척(尺)이었다.

겨울 10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13년(259) 가을 7월에 가뭄이 들고 누리(蝗)의 피해가 있어서 흉년이 들었으므로, 도적이 많았다.

14년(260) 여름에 큰 비가 내려 산 40여 곳이 무너졌다.

가을 7월에 살별(星孛)이 동쪽에 나타났다가 25일만에 사라졌다.

15년(261) 봄 2월에 달벌성(達伐城)을 쌓고 나마(奈麻) 극종(克宗)을 성주(城主)로 삼았다.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겨울 12월 28일에 왕이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