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3권(券第三) 신라본기(新羅本紀) 실성(實聖) 이사금(尼師今)

7390882@hanmail.net 2019. 10. 15. 09:25

실성(實聖) 이사금(尼師今)


실성이사금(實聖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알지(閼智)의 후손으로 이찬(伊湌) 대서지(大西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리부인(伊利夫人) 또는 기리부인(企利夫人)으로 아간(阿干) 석등보(昔登保)의 딸이다. 왕비는 미추왕(味鄒王)의 딸이다. 실성(實聖)은 키가 7척(尺) 5촌(寸)이고 두뇌가 명철하고 사리에 통달해서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나물(奈勿)이 죽고 그 아들이 어려서 나라 사람들이 실성(實聖)을 세워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원년(402) 3월에 왜국(倭國)과 우호를 통하고 나물왕(奈勿王)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았다.

2년(403) 봄 정월에 미사품(未斯品)을 서불한(舒弗邯)으로 삼아 군무와 국정에 관한 일을 맡겼다.

가을 7월에 백제가 변경(邊)에 침입하였다.

3년(404) 봄 2월에 몸소 시조묘(始祖廟)에 배알하였다.

4년(405) 여름 4월에 병(倭兵)이 와서 명활성(明活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이 기병을 이끌고 독산(獨山)의 남쪽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두 번 싸워 그들을 격파하여 3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5년(406) 가을 7월에 나라 서쪽에 누리(蝗)가 곡식을 해쳤다.

겨울 10월에 서울(경도, 京都)에 지진(地震)이 일어났다.

11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6년(407) 봄 3월에 인(倭人)이 동쪽 변경(邊)을 침입하였다.

여름 6월에 또 남쪽 변경(邊)을 침입하여 1백 명을 노략질해 갔다.

7년(408) 봄 2월에 왕이 인(倭人)대마도(對馬島)에 군영을 두고 무기와 군량을 쌓아 두어 우리를 습격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예 군사를 뽑아 적의 군영을 격파하고자 하였다. 서불한(舒弗邯) 미사품(未斯品)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무기는 흉한 도구이고 싸움은 위험한 일이다.’라고 합니다. 하물며 큰 바다를 건너서 남을 정벌하는 것은 만에 하나 이기지 못하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험한 곳에 의지하여 관문(關門)을 설치하고 오면 곧 그들을 막아서 침입하여 어지럽힐 수 없게 하다가 유리해지면 곧 나아가 그들을 사로잡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남을 유인하지만 남에게 유인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하니, 왕이 그 말에 따랐다.
11년(412) 나물왕(奈勿王)의 아들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12년(413) 가을 8월에 낭산(狼山)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받은 땅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나무 베는 것을 금하였다. 평양주(平壤州)에 큰 다리를 새로 만들었다.
14년(415) 가을 7월에 혈성(穴城)의 들판에서 크게 사열(査閱)하였고, 또 금성(金城) 남문에서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8월에 인(倭人)풍도(風島)에서 싸워 이겼다.
15년(416) 봄 3월에 동해 바닷가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뿔이 있었고 그 크기는 수레에 가득 찰 정도였다.
여름 5월에 토함산(吐含山)이 무너지고 샘물이 솟아올랐는데 높이가 3장(丈)이나 되었다.
16년(417) 여름 5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