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3권(券第三) 신라본기(新羅本紀) 자비(慈悲) 마립간(麻立干)

7390882@hanmail.net 2019. 10. 23. 08:09

자비(慈悲) 마립간(麻立干)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訥祇王)의 큰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金氏)로서 실성왕(實聖王)의 딸이다.

2년(459) 봄 2월에 시조묘(始祖廟)에 배알하였다.

여름 4월에 인(倭人)이 병선(兵船) 1백여 척으로 동쪽 변경을 습격하고 나아가 월성(月城)을 포위하였는데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이 비오는 것과 같았다. 왕성을 지키자 적들이 장차 물러가려고 하였고, 군사를 내어 공격하여 그들을 패배시켰다. 북쪽으로 추격하여 바다 어구에 이르니 적들 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반이 넘었다.

4년(461) 봄 2월에 왕이 서불한(舒弗邯) 미사흔(未斯欣)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여름 4월에 용이 금성(金城)의 우물에 나타났다.

5년(462) 여름 5월에 인(倭人) 활개성(活開城)을 습격해 깨뜨리고 1천 명을 사로잡아 갔다.
6년(463) 봄 2월에 인(倭人)이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이 벌지(伐智)덕지(德智)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중도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물리쳤다. 왕은 인들이 자주 영토를 침입하였으므로 변경에 두 성을 쌓았다.

가을 7월에 크게 사열(査閱)하였다.

8년(465) 여름 4월에 큰 물난리가 나서 산 17곳이 무너졌다.

5월에 사벌군(沙伐郡)에 누리(蝗)의 피해가 있었다.

10년(467) 봄에 담당 관청에 명해 전함(戰艦)을 수리하도록 했다.

가을 9월에 하늘이 붉어졌고 큰 별이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흘러갔다.

11년(468) 봄에 고구려와 말갈이 북쪽 변경(邊)의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하였다.

가을 9월에 하슬라(何瑟羅)사람 중 15세 이상인 자를 징발해 이하(泥河)에 성을 쌓았다. 이하(泥河)는 일명 이천(泥川)이라고도 하였다.

12년(469) 봄 정월에 서울(경도, 京都)의 방(坊)·리(里) 이름을 정했다.

여름 4월에 나라 서쪽에 큰 물난리가 나서 민가가 떠내려가고 무너졌다.

가을 7월에 왕이 물난리를 당한 주(州)·군(郡)을 다니며 위로하였다.

13년(470)에 삼년산성(三年山城)을 쌓았다. 삼년(三年)이라는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완공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14년(471) 봄 2월에 모로성(芼老城)을 쌓았다.

3월에 서울(경도, 京都)에 땅이 갈라졌는데(地裂), 가로 세로가 2장(丈)이었으며 탁한 물이 솟아올랐다.

겨울 10월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16년(473) 봄 정월에 아찬(阿湌) 벌지(伐智)와 급찬(級湌) 덕지(德智)를 좌·우장군(左右將軍)으로 삼았다.

가을 7월에 명활성(明活城)을 수리하였다.

17년(474)에 일모(一牟)·사시(沙尸)·광석(廣石)·답달(沓達)·구례(仇禮)·좌라(坐羅) 등의 성을 쌓았다.

가을 7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連)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왕 (慶)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군사를 내어 구해주려 했으나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가 이미 함락되었고, (慶) 역시 피살되었다.

18년(475) 봄 정월에 왕이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19년(476) 여름 6월에 인(倭人)이 동쪽 변경(邊)에 침입하였다. 왕이 장군 덕지(德智)에게 명해 공격하여 물리치고 2백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20년(477) 여름 5월에 인(倭人)이 군사를 일으켜 다섯 방면의 길(오도, 五道)로 침입해 왔지만 마침내 성과없이 돌아갔다.

21년(478) 봄 2월 밤에 붉은 빛이 한 필의 표백한 명주를 편 것처럼 땅에서 하늘까지 뻗쳤다.

겨울 10월에 서울(경도, 京都)에 지진(地震)이 일어났다.

22년(479) 봄 2월 3일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