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국사기

제9권(券第九) 신라본기(新羅本紀) 선덕왕(宣德王)

7390882@hanmail.net 2019. 12. 5. 15:23

선덕왕(宣德王)


선덕왕(宣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양상(良相)이다. 나물왕(奈勿王)의 10대손으로, 아버지는 해찬(海湌) 효방(孝芳)이다. 어머니는 김씨(金氏) 사소부인(四炤夫人)으로 성덕왕(聖德王)의 딸이다. 왕비는 구족부인(具足夫人)으로 각간(角干) 양품(良品)의 딸이다. 또는 아찬(阿飡) 의공(義恭)의 딸이라고도 하였다.

크게 사면했다.

아버지개성대왕(開聖大王)으로 추봉하고 어머니 김씨(金氏) 정의태후(貞懿太后)로 추존했으며, 처를 왕비로 삼았다.
이찬(伊飡) 경신(敬信)을 상대등(上大䓁)으로 삼고 아찬(阿飡) 의공(義恭)을 시중(侍中)으로 삼았다.
어룡성(御龍省)의 봉어(奉御)를 경(卿)으로 고쳤다가, 다시 경(卿)을 감(監)으로 고쳤다.

2년(781년) 봄 2월에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 지냈다.

가을 7월에 사자를 보내 패강(浿江) 남쪽의 주와 군을 위로했다.

3년(782년) 봄 윤 정월에 당(唐)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2월에 왕이 한산주(漢山州)를 두루 돌며 살펴보고 백성들을 패강진(浿江鎭)으로 옮겼다.

가을 7월에 시림(始林)의 벌판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했다.

4년(783년) 봄 정월에 아찬(阿飡) 체신(體信)대곡진(大谷鎭) 군주(軍主)로 삼았다.

2월에 서울(경도, 京都)에 눈이 세 자나 내렸다.

5년(784년) 여름 4월에 왕이 왕위를 양보하려 했으나, 여러 신하들이 세 번이나 글을 올려 말렸으므로 그만두었다.

6년(785년) 봄 정월에 당(唐) 덕종(德宗)호부낭중(戶部郎中) 개훈(蓋塤)을 보내, 부절을 가지고 왕을 검교태위(檢校太衛) 계림주자사(鷄林州刺史) 영해군사(寧海軍使) 신라왕(新羅王)으로 책봉했다.

이달에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낫지 않았으므로 조서를 내려 말했다.

“과인은 본래 재주와 덕이 없어 왕위에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함을 피하기 어려워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있는 동안 농사가 잘되지 않고 백성들의 살림이 곤궁해졌으니, 이는 모두 나의 덕이 백성들의 소망에 맞지 아니하고 정치가 하늘의 뜻에 합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왕위를 물려주고 밖에 물러나와 살고자 했으나, 많은 관리와 신하들이 매양 지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뜻대로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돌이켜 보건대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내가 죽은 뒤에는 불교 법식에 따라 불태워 뼈를 동해에 뿌려라.”

13일에 이르러 죽으니 시호를 선덕(宣德)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