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실록 국보151호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외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정족산사고, 태백산사고의 실록은 1910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었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남은 27책만이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으로 돌아왔고(1932년), 추가 확인된 47책은 93년만인 2006년7월 일본으로부터 반환되었다. 오대산사고본 47책은 기존 규장각 소장 오대산사고본과 동일본으로서 국보 151호에 추가 지정되었다. 적상산사고본 실록은 구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갔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태백산사고본 848책은 국가기록원 부산지원으로 이관되었다.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7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75책, 봉모당본 6책, 낙질본 67책, 기타 산엽본 32책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국보151-1호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이 정족산본(鼎足山本)은 1,181책으로, 태조부터 태종까지의 실록은 세종 27년(1445)에 그 이전의 춘추관본·충주사고본을 등사하고, 그 이후 명종까지의 실록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오다, 임진왜란 때 전주 유생 안의(安義), 손홍록(孫弘錄) 등에 의해 정읍군 내장산으로 운반되어 병화(兵火)를 면하게 되었다. 선조 26년(1593)에 해주로 옮겼다가 다시 선조 29년(1596)에 강화도, 선조 32년(1599)에는 묘향산으로 옮겼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 36년(1603) 7월부터 선조 39년(1606) 3월 사이에 이것을 토대로 하여 4부의 실록을 다시 제작하여 강화도 마니산에 봉안하고, 이후 실록이 편찬되는 대로 첨가하였다. 그러나 병자호란을 계기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 뒤 효종 4년(1653)에는 불이 나서 약간의 책을 잃었으며, 현종 6년(1665)에 이를 보수하였다. 숙종 4년(1678)에는 강화도 정족산에 새로 사고를 짓고 마니산사고본을 이곳으로 옮기었다. 이후 계속 편찬되는 대로 추가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으며,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국보151-2호

소 재 지; 부산 연제구 경기장로 28(거제2동 산126)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이 태백산본(太白山本)은 848책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은 선조 36년(1603) 7월부터 39년(1606) 3월 사이에 전주사고본을 토대로 만든 4부 중 하나이다. 그 이후 고종 2년(1865)에 만든『철종실록』에 이르기까지 실록이 편찬되는 대로 첨가되어 온 것으로, 선조 39년(1606)부터 1910년 일제시대까지 계속 태백산 사고에 보관되어 왔다. 그러나 1930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었다가 이관되어 국가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성종실록』 권70·71·80·132·133은 빠져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국보151-3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효자로 12(세종로 1-57) 국립고궁박물관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이 오대산본(五臺山本)은 27책으로, 태조부터 명종까지 실록은 선조 36년(1603) 7월부터 39년(1606) 3월 사이에 전주사고본을 토대로 만든 4부 중 하나이다. 그 이후 고종 2년(1865)에 만든 『철종실록』에 이르기까지 실록이 편찬되는 대로 첨가되어 온 것으로 선조 39년(1606)부터 1910년 일제시대까지 계속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어 왔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경에 일제에 의해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반출되었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화를 면한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27책이 1932년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된 이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이어졌다. 오대산사고본실록은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이후 일본에 남아있던 오대산본 실록 47책이 2006년에 환수되어 기존 27책과 함께 75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국보151-4호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적상산사고본(赤裳山史庫本)」은 6.25전쟁 때 북한군이 북으로 반출하여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적상산사고본 실록(4책)이 국립중앙박물관(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3책)에 나눠서 보관되어 온 사실을 파악하고 추가 지정한 것은 대표적인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국보 151-4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적상산사고본(赤裳山史庫本)의 지정을 계기로, 완질 또는 일부 형태로라도 국내에 전해진 조선 4대 사고(史庫)인 정족산‧오대산‧적상산‧태백산사고 실록의 현황을 모두 파악하게 되었고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머지 적상산사고본 실록의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 국보151-5호

소 재 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봉모당본(奉謨堂本)」은 첫 면에 ‘봉모당인(奉謨堂印)’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고 푸른색 비단으로 장정(裝幀)한 어람용(御覽用) 실록으로, 주로 역대 국왕과 왕비들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일대기이다. 조선 후기에 어람용 실록을 특별히 제작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자, 조정에서 논의된 국정(國政)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객관성 유지를 위해 끝까지 왕에게 보이지 않은 사관(史官)들의 철저하고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이다.

 

조선왕조신록 낙질 및 산엽본 국보151-6호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 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이 산엽본(散葉本)은 정종부터 광해군때까지를 기록한 총 558장의 낱장들로서, 오랫동안 규장각 서고에서 파지로 보관되어 오다가 1972년 6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의해 21책의 책자로 정리되어 있다.

※명칭 및 지정번호 변경; 국보 151-4호 조선왕조신록 기타 산엽본 → 국보 151-6호 조선왕조신록 낙질 및 산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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