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천 이야기길(3)

산길곳곳 옛 사람 하늘에 염원 빌던 영험한 바위

 

남목 범밭재 본래 지명 마골산 아닌 ‘쇠평산’ 
산위 동축사 뒤쪽 석암 예부터 해돋이 명소 

 

▲ 남목에는 '한골짝'이 끝나는 지점의 '외매기'와 '내매기(사진)'가 있다. 내매기는 경사가 비교적 급한편이라 중간쯤 오르다 보면 숨이 차오른다.

 

남목 감나무골 뒷산 ‘범밭재’의 산정에다 누군가 ‘마골산 정상’이라는 표지석을 20여 년 전쯤에 세워놓은 다음부터는 행정의 안내판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고, 이제는 주민들조차 의심 없이 인식되고 있지만, 본래의 지명은 다르다. 

 

1911년경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지자료」울산군편 동면 동부리에 나타나는 쇠평산(金坪山), 톳재산(兎嶺山), 망양산(望洋山) 중에 이곳은 쇠평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이곳 산을 넘어 다니는 산길을 ‘범밭재’라 부르는데, 범밭재의 가장 높은 곳을 토박이 지명으로는 ‘쇠평재만리’라 부르기 때문이다. ‘쇠평재’는 쇠평산을 의미한다. 보통 ‘재(嶺)’는 산을 지칭하며, ‘만리’는 산정, 산마루, 꼭대기, 정수리 등의 방언이다.


마골산은 영조 25년(1749)에 간행된 울산읍지『학성지(鶴城誌)』에 나타난다.
“마골산은 목장의 주룡(主龍)산이며, 동대산의 끝자락에 있다. 남쪽으로 모래부리(砂角)의 골(谷)은 점점 깊게 열려 절로 특별한 형국을 이룬다. 산면이 모두 흰 돌인데(층을 이루는 줄이 삼의 겨릅대 같기에 부르는 이름이다) 산 위에 동축사가 있으며(‘사찰’조에 자세하다), 뒤에 석암이 마치 모여 서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의 사람도) 해돋이를 보려는 자는 모두 이 바위에 오른다. 고로 횡계(橫溪) 정훈수(鄭塤叟)ㆍ정만양(鄭萬陽) 형제가 ‘일관대(日觀臺)’라는 이름을 붙였다.(세 글자를 바위 면에 세기지 않아서 비에 씻기어 마멸되었다.)”

 

▲ 쇠평논골.

 

(麻骨山 牧場主龍東大山之盡處 南邊砂角稍豁 自作別局 山面皆白石(層列如麻? 故名焉) 山上有東竺寺(詳寺刹) 寺北有巖叢立 (今古人)望日出者 皆上此石 故橫溪鄭塤萬陽兄弟名以日觀臺(三字於石面未刻 雨洗磨滅) 
(마골산 목장주룡동대산지진처 남변사각초활 자작별국 산면개백석(층렬여마추 고명언) 산상유동축사(상사찰) 사북유암총립 (금고인)망일출자 개상차석 고횡계정훈수만양형제명이일관대(삼자어석면미각 우세마멸) 

 

마골(麻骨)이라 함은 삼(麻)대를 벗기고 남은 줄기를 한자(漢字)의 뜻으로 표기한 것이고, 삼대의 본래 말은 ‘겨릅대’ 또는 ‘지릅ㆍ계립대’인데, 이를 소리대로 적은 것이 ‘계립(鷄立)’이다. 마골산 서록(西麓)을 일러 ‘새밭재’라 함도 계립령(鷄立嶺)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마골산의 산정은 현재 염포정이 있는 곳, 새밭재이다. 

 

▲ 거북바위.

 

산은 본래 제 이름이 따로 있는데, 울산의 산명 중에는 ‘가지산, 간월산, 치술령, 고헌산, 문수산, 남암산, 대원산, 무룡산, 우불산’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작은 마을 뒷산의 산명을 몰라서 산이 있는 곳의 행정구역 명칭을 붙여서 오랜 세월동안 굳어진 지명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동구의 화정산은 ‘천제산(天祭山)’이 본래지명이고, 전하산은 ‘산성산(山城山)’이, 염포산은 ‘구당산(舊堂山)’이 본래 지명이었으나, 이제는 행정기록상이나 주민들의 인식으로나 굳어져 고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이 보다 더 나쁜 이름은 근래에 무엇이 세워졌다거나 누구누구가 관리(청소)하는 약수터 등에 아무렇게 붙이는 이름이다. ‘철탑삼거리’, ‘누구누구약수터’ 등이다. 또 행정기관에서 제작한 안내판에 잘못 기록한 지명 등을 볼 수 있는데, 예산을 핑계로 고치지 않으면, 이를 대하는 주민들은 잘못 인식할 수밖에 없어진다. 주전의 ‘갑(각)골 소류지’는 ‘갓골’이 본래 지명이고, 동구청 뒷산의 ‘안산 소류지’는 ‘일산소류지’가 본래 명이다. 일산소류지에는 건설당시의 현황 등을 기록한 표지석이 지금도 소류지 둑에 세워져 있다. 방어동의 ‘성끝마을’은 ‘섬목끝’의 준말인 ‘섬끝’이 토박이 지명이다. 이곳 토박이들은 아직도 ‘서무끝’이라 불러오고 있음을 참고할 일이다.

 

▲ 범밭재.

 

‘쇠평재만리’3개면 경계지어 ‘삼면지기’  
넓은 분지 ‘악대번덕’은 아이들의 놀이터 

남목의 ‘옥류천 이야기길’ 세 번째 코스의 출발점은 옥류천 복개가 끝나는 지점 ‘물방골’에서 출발하여 도린자기 중간지점에서 ‘쇠평재만리’인 범밭재로 오르는데, 이 재를 ‘내매기재’라 부른다. 이곳 산등성이에 난 길을 경계로 좌측에 펼쳐진 골짜기는 바람골이라 하고, 우측에 펼쳐진 골짜기는 쇠평골이다. 


양쪽 골짜기를 가르는 이 길은 협소하지만 양쪽의 골짜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늘고 길게 이어져 ‘목(項)’이라 붙여진 것인데, ‘목’을 ‘모기ㆍ매기ㆍ미기’ 등으로 부른다. 남목에는 ‘한골짝’이 끝나는 지점의 ‘외매기’와 이곳 ‘내매기’가 있다. 내매기는 경사도가 비교적 급한 편인데, 중간쯤 오르다 보면 숨이 차오른다. 이곳에 ‘신선미기’라는 쉼터 같은 곳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남목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골짜기 바람이 몰려와서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바위가 마치 넓적한 평상 같은 데다 한쪽에 사각 바위가 놓여 있는 모양이 마치 신선들이 놀던 바둑판을 연상케 한다. 아래로는 가파른 절벽으로 형성된 바위와 그 틈에서 자란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다보면, 마치 범밭재로 기어오르는 형상을 한 거북바위가 있고, 그 위에는 남근암(男根岩)과 여근암이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  

 

▲ 머리진바위.

 

옛 사람들은 하늘에 마음을 기대어 살면서 그 염원하는 바를 바위를 통해서 빌면 하늘에 정성이 닿았던 모양이다. 음·양석의 이름을 보면, 음석으로는 여근암, 처녀바위, 넙바위, 천녀바위, 굼바위, 붙임바위, 공알바위, 삼신바위 등이 있고, 양석으로는 남근암, 선바위, 불선바위, 촛대바위, 송곳바위, 갓바위, 미륵바위 등이 있다. 
이 산의 산정에 난 산길(재)을 ‘범밭재’라 부르는데, 옛날에 주전ㆍ구암ㆍ당사 사람들이 울산 읍내장으로 오갈 때 이곳 ‘범밭재’를 넘어 다녔다. 범밭재는 주전 서쪽 산인 새바대 산정을 잇는 톳재이재와 쇠평산 등성이ㆍ성두배기ㆍ염포, 양정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게 벋은 재를 말한다. 범이 많이 다니던 길이라는 유래를 달고 있으나, 그 어원은 ‘벋은 산 재’이다. ‘뻗은’ 은 ‘벗 > 번 > 범’으로 음운이 옮아 간 것이고, ‘밭’은 산의 고어 ‘받’이 변한 것이며, ‘재’는 산 또는 산길(고개)을 뜻한다.

 

▲ 악대번덕.

 

범밭재에서 가장 높은 곳을 ‘쇠평재만리’라 부르는데, 이곳에 서면 동해의 바닷가 강동, 주전, 미포만의 현대조선소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1911년경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동부리에 ‘쇠평산(金坪山)’의 기록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쇠평산’ 정상이다. 이곳에 ‘성뚜배기’라는 지명도 있다. 구마성(舊馬城)이 지나는 가장 높은 곳임을 말해 준다. 또 옛날 면(面)제일때는 하상면과 강동면, 동면의 경계지점이어서 ‘삼면지기’라는 말도 전해온다.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만 내려서면 ‘머리진바위’가 있는데, 지명의 어감상 사람이나 짐승의 머리 모양을 한 바위가 얹혀 있는 느낌이어서 둘러보곤 한다. ‘머리진바위’를 한자의 뜻으로 쓴다면 ‘수락암(首落岩)’이 되는데, 이는 지명에서 ‘수리바위’를 이두(吏讀)로 표기한 것과 같다. 누군가 이두로 쓴 ‘수리바위’를 자의(字意)대로 해석하여 ‘머리(首)+진(落)+바위(岩)’로 해석한 것이 구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수리바위’는 곧 산마루(산정수리)에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이 바위는 산마루에서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여기서 동쪽으로 난 길은 ‘범밭재’라 부르고, 서쪽으로 난 길은 ‘넘에’라 불러왔다고 이곳 토박이들은 전한다.

 

머리진바위에서 남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100m쯤 내려서면 마치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달기바위’이다. 이 바위가 풍수상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지세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범밭재를 따라 쇠평마을 경유하게 되는데, 이곳은 그린벨트지역으로 그나마 자연의 훼손이 적은 편이다. 쇠평을 이곳 토박이지명으로 ‘쇠피이’라 불러왔다. 합천에도 ‘쇠피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쇠를 펴고 구부리던 대장간’이 있었던 장소로 설명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는 진장동의 신평을 ‘신피이’라 부르고, 금평을 ‘쇠피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평을 연음으로 부르거나, ‘펴다’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편, ‘새벌고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울산군 산천(山川)조에는 “효성점은 동대산 남쪽 지류에 있다.(曉星岾 東大山南支, 효성점 동대산남지)”라는 기록과 정조10년 「울산읍지」산천(山川)조에 “효성점은 무룡산 남쪽에 있다.(曉星岾 在舞龍山南麓, 효성점 재무룡산남록)”라는 기록에서 ‘효성점’을 ‘새벌고개’로 보아 지금의 ‘쇠평’으로 보는 설이 있고, 또 조선 초에 유포 석보를 축성하기 위한 상소 중에 ‘사을산리(沙乙山里)’의 지명이 등장하는데, 이곳을‘쇠평’으로 비정하는 설도 있는데, 그 주장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사을산(沙乙山)’은 ‘살뫼’로, ‘뫼수리’의 옛말로 산위 또는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의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은 ‘사을끝’과 ‘사을들’은 모두 주전동에 남아있으나 당시의 행정구역은 지금보다는 광역적이었을 것이다. 
쇠평마을의 농경을 둘러보고 수목원 앞을 지나 남서쪽에 넓은 뻔디기(原野)를 이르는데, 이곳을 ‘악다번디기’ 또는 ‘악대번덕’이라 한다. 이곳 넓은 분지에는 몇 구의 묘지가 있는데, 소를 먹이러 온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악대’말의 뜻이 무엇인지? 그 어원을 어디서 찾을지 몰라 애를 태우던 중에 우연히 훈몽자회를 뒤적이다가 ‘악대건(健)’자와 ‘악대계’자를 보고, 이를 검색해보니, 현대어로 ‘불깐소 건·계’자로 송아지·망아지를 거세하던 곳이란 뜻이 담겨져 있었다.  

악대번디기에서 감나무골로 내려오는 길을 ‘소직골’이라 부른다. 솔고 좁은 골짜기에 난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소직골은 숲이 있고, 이야기 꺼리가 있는 포근한 길이다. 이 길로 내려서면 처음 출발지로 되돌아오게 된다.

 

출처; 울산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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