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도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

순천 송광사 영산회상도 및 팔상도 국보345호

  소 재 지;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송광사

순천 송광사(松廣寺)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및 팔상도(八相圖)」는 송광사 (松廣寺) 영산전(靈山殿, 보물 303호) 에 모셔져 있는 불화들로, 조선 영조 원년(1725)에 그려졌다.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화기에 ‘영산회상(靈山會上)’과 같은 화제나 후불벽 봉안을 의미하는 ‘후불도(後佛圖)’ 대신 ‘팔상회(八相繪)’라는 용어를 사용해 해당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팔상도(八相圖)의 주불화로 일괄 제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석가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을 그린 후불탱(後佛幀)과,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탱(八相幀)이다. 후불탱(後佛幀)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일반적으로 석가후불화에서 보이는 불·보살과 제자 등의 교화성중 및 사천왕·팔부중 등 호법신들에 추가하여, 국왕과 대신같은 많은 청문성중을 비롯한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사리불(舍利佛)까지 등장시켜 놓았다. 후불탱(後佛幀)은 영산전의 주불인 석가모니불의 후불화이면서도 다른 영산회도(靈山會圖) 및 기타 전각의 석가후불도와는 다르게 그림 하단부에 설법을 듣는 청중들과 사리불까지 배치시킴으로써 법화경 내용에 매우 충실한 대표적인 영산회도라는데 의의가 있다. 팔상도(八相圖)는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8개의 주제로 표현한 불화로, 팔상의 개념은 불교문화권에서 공유되었지만 이를 구성하는 각 주제와 도상, 표현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팔상도(八相圖)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변상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초기부터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이란 팔상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월인석보(月印釋譜)』의 변상도를 차용한 팔상도가 제작되다가 후기에 접어들면서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蹟)』이 유통되면서 이를 차용한 도상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식의 팔상도가 유행하였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순천 송광사 팔상도이며, 화기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25년(조선 영조 1)이라는 제작 연대와 의겸(義謙) 등 제작 화승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팔상도(八相圖) 또한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초기 팔상도(八相圖)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나무 표현기법과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팔상탱(八相幀)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토색 바탕에 붉은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고, 영산회도와 마찬가지로 전반에 걸쳐 칙칙한 갈색 분위기의 무거운 느낌을 준다. 순천 송광사(松廣寺)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및 팔상도(八相圖)」는 단일 전각에 영산회상도와 팔상도를 일시에 조성해 봉안한 사례로는 가장 이른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석가의 일생을 불화로 시각화했던 조선시대의 독자적인 신앙 형태를 온전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팔상도만이 아니라 영산회상도까지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蹟)』의 도상을 활용하여 하나의 개념 속에 제작된 일괄 불화로서 완전함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영산회상도의 다양성과 팔상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수화승 의겸(義謙)의 지휘 하에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팔상도 각 폭이 통일된 필선과 색채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수많은 화제로 구성된 팔상의 인물들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전각, 소나무, 구름 등을 이용해 공간성만이 아니라 사건에 따른 시공간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등 구성과 표현에 있어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출처.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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