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사막길에서 중국으로

 

‘깊이 사유하는 부처님’과 ‘두타행(頭陀行)하는 제자들’

 

 

둔황석굴 시기별 흔적 달라
311개 중 232개 당대 조성
唐대표 45호굴 칠존상 유명
가섭 아난존자 부처님 시봉

당나라 시대로 둔황석굴은 석굴의 완성으로 그 길을 달린다. 당나라도 수나라와 같이 건국의 황실 계보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나라는 건국하면서 남북조시대의 문제를 같이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 이이(李耳)를 선조로 삼았다. 당나라는 불교를 선호했지만, 노자를 선조로 삼았기에 도교(道敎)를 국교로 삼았다. 당시 사회는 문벌 사회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기에 정통성을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나라 시기의 둔황석굴은 시기별로 그 흔적이 다르다. 수당 대 조성된 굴이 311개인데, 그중에서 232개 굴은 당나라 때 만들었다. 당나라 초기에는 40개, 성당기(盛唐期)에는 81개, 중당기(中唐期)에는 46개, 만당기(晩唐期)에는 60개이다. 시대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5개이다. 비하라, 차이티아굴도 이 시기에 사라지게 되었다.

굴의 모양은 방형(方形, 네모난 모양)의 구조로 감실(龕室, 부처님을 모신 방)이 넓어졌다. 불전과 본생담은 경변(經變, 경전 내용을 그린 그림)으로 바뀌는데 특히 정토교(淨土敎)의 보급으로 정토변(淨土變)이 성행하였다. 삼존상과 칠존상이 나타나는데 칠존상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두 제자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분의 천왕을 모시는 양식이다. 석굴은 더욱 화려해지고 채색이 빛이 난다.

둔황석굴은 내용별로 살펴봐야 하는데 전체를 언급하기에는 그 내용이 많아서 대표적인 것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 탐방 당시 원택스님, 황순일 동국대 교수, 일간지 기자분들과 함께 갔지만 카메라를 놓고 간 덕분에 몇 장의 사진을 구했다. 그 당시 운 좋게 촬영 허가를 받았는데 아쉬움이 있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석굴은 45호 굴이다. 45호 굴은 칠존상(七尊像)으로 유명하다. 45호 굴의 칠존상은 둔황석굴을 대표하는 칠존상으로 부처님은 생각이 깊은 모습으로 제자들은 고행(苦行, 두타라고도 한다)을 수련으로 하는 마하가섭 존자가, 반대쪽에는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아난존자의 모습은 마치 여성과도 같이 부드럽다. 옆의 각각의 보살상(菩薩像)은 마치 여성처럼 모습이 아주 관능적이기도 하며 아름답다.

328호 굴은 45호 굴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크다. 날씬한 모습의 보살상은 45호 굴의 보살상보다 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당나라 시대의 미인상은 변천이 있는데 실크로드의 영향으로 서안(西安) 서쪽의 서시(西市)에는 실크로드의 물건과 미인들이 함께 들어왔으며, 미인상이 마른 체형의 미인에서 풍만한 체형의 미인 모습으로 변하였다.

96호 굴은 둔황석굴의 북쪽에 있는데, 40m 높이의 8층 건물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 가면 우선 거대한 규모에 놀라게 된다. 그 규모에 압도된다. 실제 불상(佛像_의 높이가 33m나 되고 정면에 창이 뚫려 있어 상호(相好)를 친견할 수 있지만, 그 높이로는 일반인 출입할 수 없다.

둔황문물연구소에 따르면 측천무후(623년~705년) 연간이라고 한다. 연재(延載) 2년(695년) 무후의 재위 중이었다. 얼굴은 도록으로 보아도 별로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는 없다. 거대하다는 느낌이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측천무후가 조성했다는 용문석굴 봉선사동 석굴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다.

둔황석굴의 아름다움은 그림으로 볼 수도 있다. 둔황의 벽화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어마어마한 길이가 나온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관무량수경>을 그림으로 그린 벽화에 있다. 112호 굴의 벽화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5m짜리 석굴이지만 남쪽으로 열린 석굴을 들어가면 왼쪽에 아미타정토변상도, 오른쪽에는 금강경변상도, 북쪽 벽에는 동방약사경변상도, 보은경변상도가 그려져 있다. 아미타정토변상도는 춤을 추는 모습이 있는데 호선무(胡旋舞)를 볼 수 있다. 호선무는 한쪽 발로 지탱하면서 팽이처럼 추는 춤이다. 호라는 말은 서역(西域) 즉 실크로드에서 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구경할 수 있다기에 서안의 당락궁 쇼를 보러 갔는데 마지막에는 호선무를 추는 모습이 없었다.

석굴 북쪽에 자리한 96호굴 
40m 높이 8층 건물에 불상
무엇보다 거대한 규모 놀라
112호굴은 다양한 ‘변상도’

220호 석굴에도 정토경변상도를 볼 수 있다. 이 석굴은 당 태종 정관(貞觀) 15년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641년인데 이렇게 확실한 년도가 나오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갑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우아함이 넘친다. 다른 벽화로는 천정화들이 있는데 하늘을 나는 비천(飛天)을 그린 그림들과 아미타부처님이 망자(亡者)를 데려간다는 아미타래영도가 그려져 있다. 321호 굴에도 아미타래영도가 그려져 있는데 아미타부처님이 오시고 천녀(天女, 하늘의 여인)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상상 속의 새인 가릉빈가와 꽃과 풀들이 그려져 있다.

321호 굴의 비천상도 생동감이 넘친다. 마치 하늘에서 날아오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잘 보인다. 비천상들도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그려지는데 둔황의 비천은 우아하게 날고 있다.

둔황을 지나 이제는 중국의 내륙으로 들어간다. 하서회랑에서 만나는 병령사 석굴과 맥적산 석굴을 거처 서안으로 향한다.

 

문무왕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외래교수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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