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흑석사 마애삼존불상

 

흑석사 대변하는 서민적이고 투박한 부처님

자연석에 새겨진 본존불과
협시보살로 이루어져 있는데
얼굴 부위만 조각되어 있고
아래는 윤곽 보이지 않아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조성한 작품으로 추정해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을 주존불로 앉히고 후불탱처럼 자연암벽에 자리하고 있는 영주 흑석사 마애삼존불상.


경상북도 영주는 경주처럼 불교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의상스님이 부석사를 창건해 화엄사상을 널리 펼친 영주에는 대표적인 사찰로 오석사가 있다. 오석사는 부석사, 흑석사, 응석사, 유석사, 방석사를 말하는데 이중 방석사를 제외한 사석사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방석사는 영주시 문수면 월호리에 일명 ‘방석사지’로 불리는 곳으로 현재는 문수사가 있다. 이 절은 예로부터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저 있는 곳으로 민간에서는 문수사를 방석사로 불렀다. 유물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인근 문수초등학교 화단에 8각 연화대와 탑신이 있고 신장상 편 등이 있어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오석사 중의 한 곳인 흑석사는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석포리 1380-1)에 위치한다. 주변에 큰 검은 돌이 있었다고 흑석사로 불렀다 한다. 흑석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름과 위치가 등장하고 1799년에 저자 미상의 <범우고>에 폐사되었다는 사실만 기록돼 있다가 해방 이후 재건했다.

흑석사는 오랫동안 폐사되었지만 절을 지키고 있었던 부처님이 사찰 맨 꼭대기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상이다. 사찰에는 국보와 보물이 있어 경북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는 마애삼존불상은 그리 주목을 받지 않고 있지만 흑석사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 주는 중요한 부처님이다.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의 배경을 자처하며 세 분의 인자한 돌부처님이 서서 흑석사를 굽어살피고 있다. 높이 6m 가량의 앞으로 튀어나온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삼존불은 본존불과 협시보살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이하게 얼굴 부위만 조각되어 있고 아래는 윤곽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삼존불은 넓적한 얼굴에 광배가 있었으며 입술에는 붉은색이 보이고 있어 채색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애삼존불상을 소개한 안내판에는 이 불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연 상태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중앙의 본존불(本尊佛)과 본존을 모시는 양 옆의 보살상(脇侍菩薩)로 구성되어 있다. 삼존 모두 입상(立像)이지만 특이하게 본존불은 가슴 부분 이하 양 옆의 보살상은 목 부분 이하를 새겨 넣지 않았다. 본존불은 정수리에 솟은 큼직한 상투가 뚜렷하며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목에는 삼도(三途, 불상의 목에 표현된 3개의 주름)가 있으며, 옷 주름은 닳아서 명확하지 않다. 양 옆의 보살상은 모두 둥근 두광(頭光, 부처의 존귀함을 표현한 상징으로 머리 뒤에 장식한 것)에 삼산관(三山冠, 세 개의 반원이 이어진 모양의 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보살에 비해 왼쪽 보살의 얼굴이 더 넓게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유지되어 있고 소박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선의 표현 등에서 그 제작연대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흑석사 마애삼존불은 투박하게 조성돼 있어 서민적이다. 왕실이나 번듯한 사찰이 원력을 세워 조성한 마애불이 아닌듯하다. 고난에 처한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그 지역의 장인의 힘을 빌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수법이 정교하지 않고, 얼굴 부분을 새기고, 어깨선 아래로는 특별히 부조한 선각을 하지 않고 과감하게 생략한 모습은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시대를 거치면서 채색을 했다가 지운 흔적도 보여 이 마애삼존불에 대한 관심은 많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세월이 흘러 자연석 바위는 균열이 가 있다. 시멘트로 보수는 해 놓았으나 완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이곳에 동굴형 감실이나 보호각을 세워 마애삼존불을 모셨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은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을 주존불로 앉히고 마애삼존불은 그저 후불탱처럼 석조여래좌상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흑석사를 찾는 중생들을 굽어보며 소원을 들어주었던 마애삼존불은 누군가에게는 더할 바 없는 의지처가 되어 주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소원을 이뤄준 부처님에게 지극정성을 올렸으리라. 흑석사는 한 때는 폐사가 되어 재건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부처님을 모셔왔고, 시절인연을 만나 국보와 보물로 지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흑석사처럼 농촌마을 시골 한적한 곳에 국보와 보물을 보유한 사찰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애삼존불을 친견하러 간 12월 초의 흑석사는 주말임에도 적요(寂寥)했다. 방문객이나 기도객이 뜸해서인지 종무실 관계자는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주며 마애삼존불을 잘 안내해 주었다. 그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그 앞에 좌정한 석조여래좌상을 보좌하듯 서 있는 마애삼존불의 넉넉한 마음을 닳은 듯했다.

흑석사 아래서 위로 바라본 모습으로 마애삼존불이 제일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간간히 우는 새소리만 앞산에 메아리로 울리고 초겨울 하늘에는 흰구름이 시방세계를 표현하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신라시대에 창건해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향유했던 영화(榮華)는 사라졌지만 재건 후 현재에 이르는 전각과 당우를 갖춘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척불을 보상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은둔의 농촌사찰이지만 흑석사의 역사와 문화재적 가치는 현대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고,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도객들에게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신앙의 대상이기에 결코 조연이 아닌 주연의 부처님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소백산 세찬 바람이 휘몰아 잠시 쉬어가는 흑석사. 그곳에는 아주 소박하고 서민적인 마애삼존불이 사시사철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영주=여태동 기자 [불교신문 3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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