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넘나들던 지리산 계곡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지은 구례 연곡사 

 

신라-고려-조선 선종사 선사들 부도로 만나다

지리산 연곡사는 동부도, 북부도 등 국보 2점과
동부도비, 소요대사탑, 현각선사탑비 등 보물 4점
보월당영탑, 종인화상 부도 등 비지정문화제 4점

석조문화재를 통해 신라말부터 고려, 조선에 걸쳐
선풍을 크게 휘날린 선종 사찰임을 알려주고 있다

연곡사는 신라 경덕왕 때 연기조사가 제비가 넘나들던 지리산 계곡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전한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호젓한 곳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우거진 낙락장송 옆에 선정에 드신 선사의 모습을 시공을 초월하여 볼 수 있다. 바로 2600년 전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전한 선사들의 무덤, 연곡사 부도(浮屠)이다.

연곡사는 신라 경덕왕 때 연기조사가 제비가 넘나들던 지리산 계곡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이후 나말여초 선종의 흥기(興起)와 더불어 고려의 현각선사와 진정국사, 조선의 소요태능, 동파정심 선사의 중창으로 선종사찰의 맥을 이어왔다. 연곡사는 정유재란(1598), 의병활동(1907), 6·25전쟁(1950) 등으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선사의 부도는 당당히 연곡사의 선종역사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연곡사에는 국보 2점(동부도, 북부도)과 보물 4점(동부도비, 소요대사탑, 현각선사탑비, 삼층석탑)과 비지정문화제 4점(보월당영탑, 조선후기 부도 2기, 종인화상 부도) 등 석조문화재를 통해 신라 말부터 고려, 조선에 걸쳐 가장 크게 선풍(禪風)을 휘날린 선종 사찰임을 알려주고 있다.

구례 연곡사 대적광전에서 북동쪽으로 15m쯤 산기슭으로 올라가면 참배할 수 있는 동부도는 연곡사에 있는 부도 중 조각 솜씨가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 지대석 위에 기단부·탑신부·상륜부를 완벽하게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의 부도이다.


조각솜씨가 가장 정교한 동부도
연곡사 대적광전에서 북동쪽으로 15m쯤 산기슭으로 올라가면 동부도(870년 이전)를 참배할 수 있다. 동부도는 연곡사에 있는 부도 중 조각 솜씨가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 지대석 위에 기단부·탑신부·상륜부를 완벽하게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의 부도이다.

기단부 하대에는 구름 속에 꿈틀거리는 용들과 8마리의 사자가 위엄을 나타내고, 중대에는 신령스런 기운이 뿜어 나오는 가운데 팔부신중이 무기를 들고 천의를 휘날리며 부도를 지키고 있다. 상대에는 상하 2열에 16판씩 꽃잎 속에 다시 꽃을 장식하고, 그 위에 둥근 마디의 기둥을 세웠다. 기둥사이에는 돋을새김 한 머리는 사람이고 몸뚱이와 다리는 새의 모습인 가릉빈가 여덟 마리가 지금 날아 온 듯, 퉁소, 당비파, 나발, 요고 등을 연주하거나 춤을 추어 주인공을 찬탄하는 모습이 황홀 무아지경이다.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자세와 표정이 제각기 달라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가릉빈가는 무공적(無孔笛) 나발을 불고 있다. <금강경오가해>에서 “부처님께서 생사의 바다 속에서 밑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부시니 미묘한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법의 바다는 하늘까지 넘치니 어리석은 이들이 모두 깨어난다”고 했다. 가릉빈가는 긴 무공적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입안의 양 볼에 공기를 잔뜩 불어넣어 팽팽하여 금방이라도 묘음(妙音)이 들리는 듯하다. <법화경>에 “비천이 음악을 연주하여 부처님을 공양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부처님과 선사를 동일시하는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팔각 탑신부 남북에 새겨진 문비는 내부에 선사의 사리가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고, 또 동서로 새겨진 향로는 제자들이 스승을 영원히 공양함을 나타내고 있어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무량수경>에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수많은 보살들이 나타나 백 천 가지의 꽃과 향과 수 만 가지의 음악을 가지고 와서 왕생자에게 공양을 드리며 법회를 장엄한다”고 하였다.

문비와 향로 사이에는 사천왕이 수미산을 밟고 문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선사를 호위하고 있다. 그런데 위엄이 서려야 할 남방 증장천왕의 곱고 앳된 얼굴과 고개와 보검은 아래로 떨구고 졸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깜직하고 귀엽다. 탑신을 덮는 팔각지붕은 서까래, 부연, 기왓골 등을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또 선사께 공양을 올리는 비천은 끝없는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상륜부는 불탑과 같이 조형물의 강한 상승감과 극락조를 매개로 한 지상과 천상을 연결시켜 부도는 극락정토에 선사가 머무르는 곳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연곡사 동부도비.


동부도 앞 좌측에는 비신(碑身)이 없고 귀부(龜趺)와 이수(首)만 남아있는 동부도비가 있다. 날개 달린 거북의 등에 용의 머리를 하고, 오른쪽 앞발은 들고 왼쪽 앞발은 바닥을 긁고 물결을 헤치며 선사의 행적을 알리려는 듯 움직이는 모습이다. 중국 청나라 <강희자전(康熙字典)>에 “연은 남방에 사는 동물로서 흡사 거북과 같고 이마에 외뿔이 달려 있으며 날개가 있어서 능히 공중을 날기도 하고 육지와 바다에 서식한다”고 하였으니 연곡사 절 이름을 나타낸 귀부로 신비함을 주고 있다.

연곡사 북부도.


주인공 알 수 없는 국보 부도 2기
동부도에서 북쪽으로 150m쯤 거리에 있는 고려 초에 건립된 북부도(979년 이전)는 동부도를 모방하여 대부분 양식이 비슷하다. 다만 기단 하대에는 사자가 없고, 복련 연꽃을 장식하였다.

탑신에는 사천왕이 수미산을 밟고 있지 않고, 향로를 천인이 받들고 있는 점이 차이가 난다. 이처럼 연곡사 국보 2기의 부도는 화려하게 드러나 있지만 어느 고승의 무덤인지를 알 수 없어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드러남 속에 숨겨진 비밀을 지닌 나말여초 선종의 뿌리를 내리게 한 선승의 무덤은 스승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과 예경을 유감없이 부도에 표현하였다.

연곡사 소요대사 부도.


북부도를 서쪽으로 내려오면 연곡사 서북쪽에 소요대사 부도(1650년)가 있다. 소요태능(1562 ~1649)대사는 백양사에서 계를 받고 부휴대사에게서 경전을 배웠으며 서산대사에게 선(禪)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부도는 동·북부도와 같은 팔각원당형으로 기단의 하대석에는 네 마리 용과 안쪽 중대석 받침에는 연화문을 새겼다. 중대석 역시 팔각으로 앙련과 복련을 돋을새김하였다. 팔각 탑신 남면에는 문비와 주먹을 쥔 인왕을, 탑신 북면에는 ‘소요대사지탑 순치육년강인(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庚寅)’이라는 두 줄의 명문과 무기를 든 사천왕이 부도를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붕추녀 끝에는 신령스런 기운을 나타내었다. 상륜부는 한 돌로 사면에 극락의 나무위에 앉은 극락조가 보주를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선사 부도, 불탑 버금가게 조성
이처럼 선사의 무덤, 부도는 불탑과 같은 존재로 인식해 왔고 조형도 불탑에 버금가도록 조성하였다. <광홍명집>에 “부도는 불타(佛)라고도 말하는데, 이는 발음을 그대로 따서 쓰는 것이다. 번역하면 정각(淨覺)이라 하는데, 더러움을 소멸하고 밝은 도를 이루어 거룩하게 깨쳤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신라 경문왕12년(872)에 건립된 곡성 태안사 ‘대안사 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문’에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 하였으며, <삼국유사>에 스님을 가리켜 ‘부도지자(浮屠之者)’라 하였다.

옛날부터 부처님과 같은 존재로 표현해 오던 선사의 부도를 요즈음 학계에서는 ‘승탑(僧塔)’이라 하여 부처님보다 격이 낮은 존재로 표현하고 있어 안타깝다. 부처님의 무덤은 부도라 하지 않고, 불탑이라 하듯이 선사의 무덤은 승탑이 아닌 부도로 표현하여야 한다.

연곡사 대적광전

 

연곡사 명부전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 3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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