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고분군

‘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대성동고분군, 말이산고분군, 옥전고분군, 지산동고분군, 송학동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다.
‘가야고분군’은 지리적 분포, 입지, 묘제, 부장품을 통해 다수의 개별 정치체가 동질성을 바탕으로 상호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수평적 관계를 형성했던 가야의 독특한 정치 체계를 나타낸다. 가야 연맹은 내부적으로 여러 정치체 간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 는 주변국과의 교섭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7개 고분군은 한반도 남부의 해안과 내륙의 각 정치체의 중심지의 가시성이 뛰어난 구릉지에 오랜 기간 군집 조성된 최상위 지배층의 고분군으로 가야 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존재를 보여준다.
가야식 석곽묘와 토기를 비롯한 부장품은 동질성을 공유했던 가야연맹 전체의 지리적 범위를 알려 주고, 이들의 세부적인 차이는 연맹을 구성했던 각 정치체의 범위와 개별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대등한 수준의 위세품과 교역품은 연맹을 구성한 각 정치체가 자율성을 가진 수평적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김해 대성동고분군
김해 대성동고분군은 경상남도 김해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금관가야의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사적 341호로 지정ㆍ관리되고 있다.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10여 차례 실시되어 136기 이상의 고분이 조사되었다.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자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의 무덤들이 축조되어 있다. 조사된 무덤의 종류는 널무덤, 덧널무덤, 독무덤, 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이며, 덧널무덤이 중심 묘제이다. 덧널무덤은 3세기 후기에서 5세기 전기 금관가야 지배자집단의 대형 무덤으로 주인공과 순장자를 같이 배치한 구조이다. 덧널무덤에서는 금관가야 전성기의 문화를 보여주는 각종의 생활용품, 철제품, 말 갖춤새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중국・북방・일본열도에서 수입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동북아시아 각국의 교류실태를 이해할 수 있다.
함안 말이산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에 자리잡고 있는 아라가야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현재 사적 제51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1914년 말이산 5호분과 34호분 조사로 함안 말이산고분군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이후 30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100여기의 봉토분을 중심으로 수백기의 중소형 고분이 축조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함안 말이산고분군의 대형분은 안라국 또는 아라가야의 지배자 묘역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부구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조를 달리한다.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목관묘가 축조되기 시작하여 4세기에는 길이 5m 이상의 대형의 목곽묘로 발전하고, 5세기에는 구덩식돌방무덤(竪穴式石槨墳)이 축조되며, 6세기에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교체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출토유물 중에는 아라가야 왕들을 상징하는 각종 무기류 말 갖춤새,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마갑총에서는말 갖춤새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것과 같은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어 아라가야가 철을 배경을 강력한 고대왕국을 형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적341호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와 김해공설운동장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이 고분군은 1990년에서 1991년까지 3차에 걸친 경성대학교(慶星大學校) 박물관(博物館)의 학술발굴(學術發掘)에 의하여 김해(金海)를 중심으로 했던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지배계층의 무덤이 함께 한 집단묘역(集團墓域)으로 밝혀졌다. 길이 약 300m, 높이 20m정도의 구릉 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현재 구릉의 정상 일부분을 제외한 주변의 경사지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마을에서는 무덤으로 덮힌 이곳 구릉(丘陵)을 '애구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무덤의 위치에 따라 그 시기(時期)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곧 2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묘역(墓域)이 형성되었다. 덧널무덤은 나무판을 조립하여 널(관)을 만든 것으로, 이전에 통나무관을 이용하던 것에서 나무판널을 사용하는 시기로의 전환이 1세기경임을 보여준다.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목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사적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삼한시대에 함안을 중심으로 한 변진의 안야국(安邪國)이 있던 이 일대는 낮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그 뒤의 높은 지대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낮은 산등성이가 여러 갈래로 부채살같이 퍼져 있다. 그리고 낮은 산등성이에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말산리·산음리·가야리에,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큰 무덤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1917년 일본인이 처음으로 조사한 뒤에 1992∼1994년까지 창원 문화재연구소가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다양한 내부구조를 하고 있는 113여 기의 무덤 안에서 많은 양의 각종 토기·철기·장신구와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 발굴된 무덤의 내부구조는 덧널무덤(목곽묘)이 대부분인데, 덧널무덤의 중심연대는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후반까지로 추측할 수 있다. 무덤의 규모와 내부구조, 발견된 유물의 차이에 의해서 소형무덤과 대형무덤으로 나누어진다. 함안 말산리 고분군은 함안지역은 삼한시대에 아라가야(阿羅伽倻)가 있던 곳으로 이 지역에 있는 무덤들은 5∼6세기경에 만들어졌다. 도항리 고분군과는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은 도항리 고분군에 속하며, 이 고분군에 속하는 무덤은 1·4·9·10호의 4기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높이 9.7m, 지름 39.39m의 4호무덤은 가야읍 아라공원 안에 있는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으로 1917년에 발굴조사되었다. 내부구조는 장방형의 반지하식 돌방을 가진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이다. 발견된 유물 가운데 수레바퀴 모양의 토기와 새모양 토기·말띠드리개가 특징적이며, 그밖에도 각종 토기류와 철제무기, 말장식류, 사람의 뼈 등이 발견되어 이 시대에 함안지역 문화를 밝혀줄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말산리(末山里)라는 지명도 능선의 말단부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함주지(咸州誌)에 말이산 고분군이 있는 구릉의 동쪽에 있는 하산(下山) 부락을 '말이산(末伊山)'이라 하고, 그 서쪽에 있는 우곡리(牛谷里) 부락을 '서말이산(西末伊山)'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구릉에 있는 말산(末山) 부락의 명칭을 '이(伊)'자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말이'(Mar-i)를 두(頭 - 머리)와 같은 것으로 보아, 지명이 말이산(末伊山)이 된 것은 고분군이 있는 구릉을 높여 부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함안군내 도항리-말산리의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1995년까지 10차에 걸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에 관한 내용을 간추리면, 함주지(咸州誌) 고적 항목의 고총(古塚) 난에 '우곡 동쪽과 서쪽 언덕의 고총은 높이와 크기가 언덕과 같은 능이 40여개 있다. 옛날 국왕의 능이라고 전한다. 우곡동서구고총 고대여구릉자사십여 언전고국왕릉운(牛谷東西丘古塚 高大如丘陵者四十餘 諺傳古國王陵云)'고 한 것이다. 함안군청고적조사표(咸安郡廳古蹟調査表)에 가야면 말산리(3기), 도항리(33기), 신음리(9기), 가야리(3기), 대산면 장암리(1기)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은 1963년 사적 79호로 지정(넓이 830,181㎡)되어 관리되고 있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능선을 따라 길이 2.4km, 너비 1km 범위의 구릉 위에만 길게 분포하는 삼국시대 가야 지역 최대의 고분군이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은 5세기 초~6세기 중엽에 축조된 704기의 봉토분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고분군으로, 당시의 토목기술을 잘 보여주는 700여기의 대․소형 무덤이 망자의 사회정치적 위계와 집단에 따라 여러 군집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중․소형 고분군들만으로 이루어져 동 공간이 ‘죽은 자들의 공간’으로 신성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적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고령은 대가야의 옛 지역으로서 무덤이 수백 기에 이르고 있다. 그 중 지산동 무덤들은 겉모습이 확실하고 봉분이 비교적 큰 무덤에 한하여 번호를 매겨 지금은 72호 무덤까지 정해져 있다. 이들 무덤의 겉모양들은 모두 원형의 봉토를 하고 있고, 봉토의 규모에 따라서 대형·중형·소형무덤으로 구분한다. 봉토는 흙을 높이 쌓아서 무덤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주로 대형무덤은 산등성이의 위쪽에 많이 있으며 중형무덤은 산등성이의 중간 정도에 모여 있고, 작은무덤들은 대형무덤과 중형무덤 주위나 그 밑에서 발견이 된다. 내부구조는 돌널무덤(석상묘) 돌덧널무덤(석곽묘), 돌방무덤(석실묘) 등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데, 돌널무덤의 경우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한 봉분 안에 여러 무덤이 나타나는 것은 가족무덤의 성격이라기 보다 딸려묻기(순장)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형무덤에서 많은 양의 토기와 함께 금동관·갑옷 및 투구·칼 및 꾸미개 종류가 출토되고 있으며, 4∼6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령(高靈)은 대가야(大伽倻)의 고지(故地)로서 읍남(邑南)과 읍북(邑北)에 고분(古墳) 수백기(數百基)가 있으며 지산동(池山洞)은 그 읍북군(邑北群)으로 1970년 200기(基)가량의 고분(古墳)이 산재(散在)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시대(時代)가 떨어지는 것도 있으나 대구(大邱)에서 고령(高靈)으로 들어가면서 보면 읍(邑)과 산능선(山稜線)에 큰 봉분(封墳)이 4,5기(基) 보인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도항리 고분군



함안 말산리 고분군





고령 지산동 32-35호분 발굴현장

유대양이부호(지산동32호분출토)

기대 및 장경호(지산동35호 분석실 출토)

갑옷 및 투구 일습

금동관(고령 지산동32호분 석실 출토)


은상감 당초문 환두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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