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문화제도(정치행정 1)

정치행정(政治行政)

 

정치이념
단군조선의 정치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리화(在世理化)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인간세상(人間世上)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고, 재세이화는 세상을 도리(道理)로써 다스린다는 뜻이다. 도리라 함은 하늘, 땅, 사람의 마땅한 이치(理致)를 가리킨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의 실현은 천부삼인(天符三印) 사상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며, 서기전 7197년에 세워진 환국(桓國) 시대부터 시작되어, 배달나라에 계승되어 다시 단군조선으로 계승되었다. 물론 천부(天符) 실현은 서기전 70378년 계해년부터 시작된 마고(麻姑)시대에 이미 존재하였다.

천부삼인(天符三印)은 하늘의 뜻을 상징하는 세 가지 증표이다. 상징(象徵)으로서 하늘(天), 땅(地), 사람(人)이며, 도형(圖形)으로는 원(圓, ○), 방(方, □), 각(角, △)으로 나타나고, 사물로는 거울(鏡), 방울(鈴) 또는 북(鼓), 칼(劍) 또는 창(槍)이며, 가르침으로는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으로 나타난다.

하늘이 첫번째로 횐(桓, 天, 一, 大, one, un), 하늘(天) 하나(一)이며, 땅은 두 번째로 따(地, 들), 땅(地), 둘(二, 두, two)이며, 사람은 세 번째로 서이(人), 사람(人), 세(三, 서이, three)이다.

원(○)은 하늘(天), 태양(太陽. 해), 거울(鏡)을 상징하고, 방(□)은 땅(地), 북(鼓), 방울(鈴)을 상징하고, 각(△)은 사람(人), 칼(劍), 창(槍)을 상징한다. 거울은 천성(天性)으로서 인간의 본성(本性) 그 자체이며 천법(天法)을 나타내고, 북이나 방울은 천음(天音)으로서 천법(天法)을 집행하는 것을 나타내며, 칼이나 창은 천법(天法)에 어긋나는 악(惡)을 처단하거나 바로 잡는 신수왕권(神授王權)으로서 천권(天權)을 나타낸다.

거울이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며, 빛을 반사하는 것은 태양을 상징하고,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천성(天性)을 되돌아보게 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방울이 음양의 태극모양을 지녀서 소리를 내는 것은 천지(天地) 음양(陰陽)의 태극(太極)으로서 천지자연의 소리를 상징하고, 북이 양면을 가지고 소리를 내는 것도 천지 태극의 소리를 상징한다.

칼이 칼날, 칼목, 손잡이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것은 천지인(天地人)의 음양중(陰陽中)으로 완성된 것을 나타내며, 베는 기능은 악을 처단하고 선(善)을 권하고 보호하는 상징성을 가지며, 삼지창(三枝槍)도 세갈래로 천지인의 셋이 원래 하나임을 나타내고 찌르는 기능은 또한 악(惡)을 처단하는 상징성을 지니는 것이다.

천법(天法)을 세우고 집행하고 처단하는 직책이 각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이며, 각 입법(立法), 행정(行政), 사법(司法)으로서 삼권분립(三權分立)으로 균형을 이루어 홍익인간(弘益人間) 세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천부삼인(天符三印)은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데 왕도(王道)로 나타난다. 왕도(王道)는 인간세상의 사람들을 부모가 되어 자식처럼 보살피는 도리이다. 신(神)은 부모가 되어 만물을 낳으며, 왕(王)은 신(神)을 대신하여 부모가 되어 악(惡)을 처단하여 백성들의 목숨을 보존하고 보살피고, 이러한 왕의 일을 보좌하여 사람들을 가르쳐 바른 도리로써 이끄는 사람이 스승(師)이다. 사람의 스승(師)이 추대를 받아 왕(王)이 되고, 왕이 신(神)을 대신하여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신(神)을 대신하여 왕도(王道)로써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이 왕권(王權)이므로 왕권은 곧 천권(天權)인 바, 왕권을 실현하는 필요악으로서 선(善)을 지키고 회복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 위엄을 상징하는 칼(劍)이다. 칼은 전쟁시에는 군사권(軍事權)을 상징하게 된다. 

단군조선의 영역(領域)
단군조선은 배달나라의 정통성과 역사를 이었으며, 배달나라는 환국(桓國)의 정통성과 역사를 이었는 바, 단군조선은 환국(桓國)시대 9족(族)의 나라이며,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영역을 다스린 나라가 된다.


단군조선의 영역 중 천제(天帝), 천왕(天王)이 다스리는 진한(眞韓)과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이 다스리는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삼한관경은 36방 1,000리로서 사방 1,000리의 땅이 36개나 된다. 즉 단군조선 삼한은 36주(州)로 이루어지는 것이 되는데, 이는 방(方) 6,000리의 땅이라는 사실에서 계산되어져 나온다.

단군조선의 태백산인 지금의 백두산이 단군조선의 동서남북의 중심이 되는 곳이며, 단군조선 삼한 관경은 천상(天上)의 나라로서 백두산에서 동서남북으로 각 3,000리가 된다. 삼한관경의 밖은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에 속하는 천하(天下)의 영역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를 전기, 후기, 말기로 나누어 시기별로 강역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단군조선 전기, 아사달 시대 서기전 2333년~서기전 1286년
단군왕검(檀君王儉)은 구이(九夷)의 추대에 응하여 임금이 되어 조선(朝鮮)을 건국하였다. 환배달조선의 건국은 전시대와 후시대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통성을 이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될 뿐이다.

처음 단군조선의 영역은 중국내륙은 반란자이던 당요(唐堯)의 나라를 제외하고 그 나라를 둘러싼 모든 영역이 이에 해당하였다. 즉 처음 단군조선의 영역은 태원(太原) 이남의 소위 구주(九州)의 땅을 제외한 배달나라 영역 전체가 되는 것이다.

당요(唐堯)의 구주(九州)는 주(周)나라 시대의 영역을 감안하면, 서안(西安)에서 태원(太原)을 거쳐 다시 산동(山東)서쪽을 지나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가로 세로 각 3,000리 즉 방(方) 3,000리에 해당하는 땅이 되며, 단군조선 삼한관경의 1/4의 넓이에 해당한다.

 

이후 서기전 2324년경 당요(唐堯)는 단군조선에 굴복하여 반역자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천자(天子)라는 제후가 되었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의 강역은 배달나라 영역 그대로였으며, 배달나라는 환국(桓國)을 계승한 나라이므로 환국(桓國)의 영역 그대로가 된다. 즉 파미르고원의 동쪽으로 동서 2만리에 남북 5만리에 해당하는 모든 땅이 단군조선의 영역이었다.

물론, 단군조선의 삼한관경 내에 해당하는 땅은 가로 세로 각 6,000리로서 방(方) 6,000리이며 방(方) 1,000리의 땅이 36개로서 36주의 나라가 된다.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땅은 방(方) 1,000리가 1,000개로서 1,000주(州)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삼한관경 외의 땅 즉 천하에 해당하는 천자국인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의 땅은 자치국으로서 단군조선 삼한관경에 포함되지 아니하나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구족(九族)에는 포함되는 것이다.

황이(黃夷)는 황하(黃河) 이북으로 시베리아 지역까지 대부분을 차지하고, 백이(白夷)는 서안(西安) 서쪽의 사막의 땅을 차지하며, 적이(赤夷)는 양자강 남쪽의 땅에 살고, 남이(藍夷)는 황하~산동~양자강 사이에 살며, 현이(玄夷)는 흑룡강 유역에 살고, 그외 황이(黃夷)의 파생족인 양이(陽夷)는 지금의 한반도에 살며, 우이(于夷)는 송화강, 두만강, 우수리강 유역에 살고, 방이(方夷)는 송화강 우수리강 북쪽에 살며, 견이(畎夷)는 서쪽의 삼위산(三危山)을 중심으로 서안(西安)에 걸치는 지역에 살았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영토는 파미르고원의 동쪽으로 티벳, 천산(天山), 시베리아, 황하(黃河), 만주, 흑룡강, 한반도, 중국내륙을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제국이었던 것이다.

2) 단군조선 후기,  백악산아사달 시대 서기전 1285년~서기전 426년
서기전 1285년에 우현왕(右賢王) 색불루(索弗婁)가 군사력을 앞세워 제22대 소태(蘇台) 천왕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천왕(天王)이 되었다.

스스로 단군 천왕의 정통을 이었다고 하였으니 그 강역은 전기 단군조선의 영역을 그대로 이은 것이 된다.

3) 단군조선 말기, 장당경 시대 서기전 425년~서기전 238년
서기전 426년에 우화충(于和沖)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44대 물리(勿理) 천왕이 피난하였고, 이에 백민성(白民城) 욕살 구물(丘勿)이 명을 받아 군사를 일으켜 난을 진압하니, 오가(五加)의 무리들이 구물(丘勿)을 추대하여 천왕으로 삼았다.

구물(丘勿) 천왕은 장당경(藏唐京)을 수도로 삼았는데, 이후 단군조선의 결속력이 약화되어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되었고, 서쪽의 번한(番韓)이 번조선(番朝鮮)으로, 한반도의 마한(馬韓)이 마조선(馬朝鮮)으로 단군 천왕의 직할영역은 진조선(眞朝鮮)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로써 주나라 전국시대에 단군조선이 구이(九夷) 대신에 소위 동이(東夷)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이후 서기전 323년 번조선(番朝鮮)의 기후(箕詡)가 연(燕)나라를 대비하여 왕이라 칭하면서 단군 천왕의 윤허를 받아 번조선왕(番朝鮮王)이라 칭하였던 것이며, 서기전 194년 번조선(番朝鮮)에 망명하여 박사로서 상하운장(上下雲障)에 봉해졌던 위만(衛滿)이 번조선(番朝鮮)을 차지한 이후에도 조선왕이라 칭하게 되었다.

장당경(藏唐京)은 개원(開原)이라 불리우는 곳이며, 지금의 요동반도의 북쪽에 해당하고 현재의 심양(審陽)에 해당한다. 서기전 425년 장당경(藏唐京)이 당시 단군조선의 수도이며 그 강역에는 변동이 없다고 보이지만 그만큼 결속력은 약화되어 단군의 명령이 잘 듣지 않게 되었고, 서기전 238년에는 결국 고열가(古列加) 천왕이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그래서 장당경(藏唐京) 시대의 단군조선의 강역은 만리장성 동쪽의 번조선(番朝鮮)과 한반도의 마조선(馬朝鮮), 만주의 진조선(眞朝鮮) 영역에 해당하고, 만리장성의 북쪽과 서안(西安) 서쪽 지역은 흉노(匈奴), 선비(鮮卑), 견이(犬夷), 백이(白夷, 西夷) 등이 단군조선의 명령없이 각 제후들이 왕(王)을 칭하는 등 군사를 마음대로 부리면서 자치(自治)를 한 것이 된다.

서기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중국내륙을 통일하면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던 중국내륙 동쪽지역의 회이(淮夷), 사이(泗夷) 등 동이국(東夷國)들이 모두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에 복속하게 되면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北扶餘)의 영역은 기씨(箕氏)의 번조선(番朝鮮)과 진조선(眞朝鮮) 땅이던 만주가 되었고, 한반도는 북쪽 평양지역은 최씨(崔氏)의 낭락국(樂浪國), 중부와 남부 지역은 동쪽의 진한(辰韓), 서쪽의 마한(馬韓), 남쪽의 변한(弁韓)으로 후삼한(後三韓)의 땅이 되었다.

서기전 238년에 단군조선이 망할 때 마조선(馬朝鮮)도 함께 망한 것이 되며, 서기전 195년 위만이 번조선을 차지하기 이전에 번조선 영역에 속하는 낙랑(樂浪)에서 최숭(崔崇)이 무리를 이끌고 배를 타고 한반도 평양에 도착하여 낙랑국(樂浪國)을 세웠던 것이고, 그 이전인 서기전 209년에 서라벌(지금의 경주) 땅에 진한(辰韓)이 세워지고 6부의 자치가 행해져 서기전 57년까지 이어졌으며, 남쪽 땅에는 변한(弁韓)이 세워져 9간들의 자치가 행해져 서기 42년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한편, 서기전 194년에 번조선왕(番朝鮮王)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속아 나라를 빼앗기고 평양으로 배를 타고 왔으나, 토착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금마(金馬, 익산)에서 마한왕(馬韓王)이 되었는데 1년만에 죽고, 직산(稷山)에서 중마한(中馬韓)을 세웠던 번조선(番朝鮮)의 상장군 탁(卓)이 기준왕(箕準王)의 뒤를 이어 마한왕(馬韓王)이 되었으며, 이후 10대를 이어 백제에게 망하기까지 서기 9년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출처; 데일리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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