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상부 용머리 조각

만덕산 백련사 편액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보물2217호

소 재 지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만덕리 246) 백련사

만덕산(萬德山)에 위치하는 강진 백련사(白蓮寺)는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1년(839)에 지은 절이다.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신라시대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이 창건하였다. 고려말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의 결사처(結社處, 불교의 혁신운동)로써 조선시대에도 많은 승려들이 수행했던 사찰이며, 주불전인  「강진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은 1760년 화재 이후 1762년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이다.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은 공포(栱包, 전통목조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상부에 짜 맞추어 올린 부재)의 형식과 초각(草刻, 건축부재에 다양한 무늬를 새겨서 장식하는 것) 등 세부기법이 화려하고, 기둥 상부의 용머리 조각, 천장 상부의 용머리 장식 등은 해학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의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형식이다. 제공의 외부는 초제공에서부터 3제공까지 연화 무늬가 결합된 앙서형, 4익공은 연봉이 달린 수서형, 5운공은 봉두이고, 내부는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연봉·연밥·연밥·연꽃을 조각했고 그 위로 봉두를 올렸다. 이러한 살미의 구성은 호남을 중심으로 형식화되어 점차 영남까지 확산되는데,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의 건축연대는 그 중간에 있다. 또한, 불상 위에 닫집을 설치하지 않고 우물천장을 이중으로 설치한 점, 실내를 채운 여러 마리의 용과 봉황 장식, 정면 기둥에 끼워진 청룡과 황룡 모습의 안초공, 살미를 길게 빼서 내주의 보아지로 사용하는 기법 등은 당시 건축양식의 시대적, 지역적 전개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실내를 채운 여러 마리의 용과 봉황 장식 등은 18세기 이후 불전 건축이 장식화 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사찰 건축 관련 기록이 풍부하여 학술적 가치가 높다.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 건축과 관련된 기록은 「만덕산백련사대법당중수기」와 사찰 기록인 「만덕사지」 등을 통해서 중수기에는 복구 사업의 정확한 일정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대시주질, 연화질, 야장, 목수질 등 직임과 인명을 정리해두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사찰 건축의 추진과정을 복원할 수 있으며, 담당자들 간의 인맥이나 영향 관계도 추적이 가능하다. 특히, 도편수, 부편수, 승묵편수 등 불전 건축 목수들의 계보와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이다. 고려와 조선 불교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백련사(白蓮寺)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世)가 백련사(白蓮)에서 백련결사(白蓮結社)가 개설되고 조선시대에 취여삼우(翠如三愚)의 법회가 열렸던 장소이고, 효령대군의 지원에 힘입어 중창했던 역사가 있다. 신앙결사 운동의 이론적 측면을 완성함으로써 지눌(知訥)의 수선결사(修禪結社)와 함께 대표적인 신앙결사의 축을 이루었다. 또한 백련사(白蓮寺)의 승려들은 사대부에게 의탁하여 중창기와 사적기를 작성했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협업하여 「만덕사지」를 편찬하는 등 불교와 유교가 서로 교류했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의 작업이며, 법당 실내에는 신라시대 명필 김생(金生)의 글씨가 집자되어 있다. 이와 같이 백련사(白蓮寺)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처럼 백련사(白蓮寺)의 역사는 권력과 민중, 불교와 유교의 상호교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대웅보전(大雄寶殿)은 그 한 시기를 예증하는 건물이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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