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찾아가는 호젓한 경산 환성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좋을 ‘연리지’ 사찰

“하늘과 땅이 갈라져 음과 양이 생겨나고
수컷이 암컷 불러 여자가 남자를 따르네
돌아온 봉이 황을 찾으니 참으로 다정하고
외로운 난새 짝을 잃으니 혼자 방황하네

나무에는 연리지 있어 뭇 초목과 다르고
꽃에는 동심초 있어 뭇 풀과는 다르다네
닭은 제 짝이 죽으면 다시 배필을 얻고
기러기는 형제가 없어도 나란히 날아가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남녀 간 사랑
비유적으로 표현…놀라움 금치 못해
다양한 조각으로 사랑 장수 등 기원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須彌壇). 다양한 동물 조각을 통해 사랑과 장수, 다자다복 등을 기원하는 조상들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찾아가는 호젓한 경산 환성사(環城寺)는 서로 마음이 통하여 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연리지처럼 환성사는 팔공산 주변의 산들이 고리를 이루어 성처럼 둘러싸인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중생과 부처님이 함께 둥근 마음의 고리를 만든다면 깨달음의 일원상(一圓相)이 될 것이다. 연못을 지나 낮은 돌계단을 오르면 허튼 쌓기로 돌담장을 두른 팔작지붕의 누각, 수월관(水月觀)이 나온다. 수월관은 수행자가 물속의 뜬 달을 보고 모든 법에는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누각은 구불구불 자연미 넘치는 대들보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용 같다.

수월관

 

환성사 대웅전 전경.


파격적 조각 대웅전 수미단
환성사는 신라 때 심지왕사가 창건했고,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사찰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 전기에 지어져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대사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기단은 편안하고 팔작지붕은 매우 안정된 비례를 이루고 있어 대체로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준다. 대웅전 내부의 운궁형(雲宮形) 보개(寶蓋)는 높고 당당하여 장중한 느낌을 준다. 특히 수미단(須彌壇, 佛壇, 寶壇)의 파격적인 조각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한다.

이게 뭐야? 아니 어떻게 대웅전에 있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당시 조선의 유교사회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부부유별(夫婦有別) 등 이성간의 이야기는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성사 수미단은 남녀 간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청정 사찰에 그것도 스님에 의해 부처님의 발밑에 있다니, 수행자는 애욕이 수행을 방해하는 제일 큰 걸림돌이어서 계율에 따라 엄격히 규제되어왔다. 그러나 부처님은 부부지간의 행복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권장하셨다.

 

대웅전 수미단의 다양한 조각 가운데 꽃을 물고 있는 귀면 모습.


남편의 다섯 가지 실천 덕목
<선생경>에 “선남자여 만일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고 어여삐 생각하면 반드시 이익이 불어날 것이요, 흉하거나 쇠하지 않으리라. 남편은 다섯 가지 일로 처자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물품을 공급하여 주어야 한다. 첫째 처자를 어여삐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몸에 걸치는 장신구를 사주는 일이고, 넷째는 집안에서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아내의 친족을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2600여 년 전 부처님 말씀이지만, 현재도 귀담아듣고 실천해야 할 사항들이다. 부처님께서는 부부지간의 사랑을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 강조하셨다.

봉황과 연리지(왼쪽). 오리와 연꽃, 물총새(가운데). 혼인색을 띤 물고기(오른쪽).


다자다복 기원 다양한 수미단 조각
1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미단은 길이 652cm, 너비220cm, 높이114cm의 장방형으로 받침과 몸체 그리고 덮개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수미단 전면 아래 받침에는 황룡과 청룡 여섯 마리, 좌우 측면에는 꽃과 금강저, 밧줄을 문 귀면이 부처님을 수호하고 있다.

위 수미단 덮개 부분 아래에는 연꽃을 새겨 연화좌를 나타내었다. 수미단 중간 몸체 부분은 아름다운 조각으로 꾸몄는데, 전면 열두 개, 좌우측면 여덟 개의 칸에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민화풍의 길상 문양과 꽃과 새, 물고기 등을 조각하여 대담하게 성적 묘사를 했다. 좌우측 2면에는 연꽃 속에는 혼인색(婚姻色)을 띤 한 쌍의 물고기가 연잎 사이로 헤엄치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쌍을 이룬 물고기는 부부의 화합과 다산(多産)을, 두 송이의 연꽃은 연달아 지속되는 부부애를, 연실(蓮實)은 다자다복(多子多福)을 나타내고 있다.

수미단 전면에는 알고 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남녀 간의 사랑을 동물에 비유하였다. 전면 중앙에는 암수 한 쌍의 오리가 활짝 핀 연꽃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인데 춘정(春情)이 발동한 수컷이 날개짓으로 암컷의 등을 타고 교미(交尾)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또 이 광경을 지켜본 작은 물총새 수컷이 짝을 부르니 반대편에서 암컷이 짝을 찾아 날아드는 모습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부부 사랑을 표현하였다.

전면 좌측에는 암수 봉황이 휘어진 연리지 꽃 속에서 암수 봉황이 아름다운 꼬리를 서로 교차하고, 수컷 봉(鳳)이 암컷 황(凰)의 머리를 누르는 모습으로 애정을 표현하였다. 특히 봉황의 뒤에는 활짝 핀 연리지 꽃은 봉황 부부의 애정을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다. 연리지는 뿌리와 줄기가 각기 다른 두 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된 가지를 말하는데 춘추전국시대 한빙(韓)과 그의 아내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규보는 “연리지에 꽃 피니 봄이 늙지 않고(連理花開春不老)”라 하여 부부의 사랑을 연리지에 비유하였다.

단정학과 국화.


단정학 한 쌍 눈길
전면 우측에는 사랑을 꿈꾸는 동심화(同心花)인가? 활짝 핀 여러 송이의 꽃과 봉오리를 배경으로 단정학(丹頂鶴) 한 쌍이 여유롭게 쉬고 있다. 예로부터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단정학은 장수를 기원하고, 부부애를 과시하는 상징으로 여겨 왔다. 학은 한 번 짝을 맺으면 부부가 평생 해로하고 늘 가족 단위로 집단을 이루기 때문에 사랑을 받아온 길조이다.

이밖에도 수미단에는 가릉빈가는 연꽃을, 원숭이는 보주를 바치는 등등 이를 통해 중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부처님께 기원하였다. 이처럼 환성사 수미단에는 이규보의 시를 옮겨 놓은 듯하다. 일부를 옮겨보면,

“하늘과 땅이 갈라져 음과 양이 생겨나고(二儀剖判有陰陽)

수컷이 암컷 불러 여자가 남자를 따르네(雄或呼雌女逐郞)

돌아온 봉이 황을 찾으니 참으로 다정하고(歸鳳求凰眞眷戀)

외로운 난새 짝을 잃으니 혼자 방황하네(孤鸞失偶却徊徨)

나무에는 연리지 있어 뭇 초목과 다르고(木聞連理殊群卉)

꽃에는 동심초 있어 뭇 풀과는 다르다네(花見同心異衆芳)

닭은 제 짝이 죽으면 다시 배필을 얻고(不有婦夫鷄得匹)

기러기는 형제가 없어도 나란히 날아가네(亦無兄弟聯行).”

삼라만상은 ‘하나의 둥근고리’ 설파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의 조각을 통해 우리 조상들은 사랑과 장수, 다자다복 등을 기원하였다. 장한가(長恨歌)를 보면 “당 명황(唐 明皇)이 양귀비의 팔을 베고 밤하늘을 우러러보다가 견우와 직녀의 일에 감동되어 은밀히 연리지처럼 세세생생 부부가 되기를 약속했다”고 한다. 환성사는 봄날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마음을 나누는 사시사철 봄날이다. 동산의 연리지처럼, 물속의 비목어처럼. 환성사 수미단처럼. 삼라만상이 아름다운 하나의 둥근 고리, 환성이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환성사 심검당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 37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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