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한국불교 최초 사찰
고구려 초문사, 375년 국내성에 창건
석가모니 부처님은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그 깨달은 바를 전했다. 그리고 80세에 열반에 들 때까지 45년간 대중 곁에 머물며 진리에 눈뜰 것을 역설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경전은 이러한 부처님 생전의 설법을 문자화한 것으로 부처님 열반 후 수 차례의 결집을 통해 이뤄졌고, 중국을 거쳐 서기 372년 우리 나라에 전해졌다. 이후 한국불교는 대중들이 모여 신앙생활을 영위할 구심점으로 사찰을 세우기 시작했고, 사찰을 장엄하는 수많은 불교문화가 함께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헌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불갑사는 385년에 창건됐다.
현존 최고 사찰로 알려진 강화 전등사는 381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이 왕위에 오른 다음해 6월 어느 날. 신하로부터 진나라의 부견 황제가 보낸 사신과 승려 일행이 궁궐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소식을 들은 소수림왕은 친히 궁궐에 있는 성문이라는 곳까지 나가 그들을 맞았다. 왕실 밖에까지 마중 나온 왕을 본 일행은 감격했고, 이 가운데 승려 순도가 앞으로 나서 “진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고구려에 불법을 전해드리기 위해 찾아온 승려 순도입니다. 진나라 황제께서 불상과 경문을 전해드리라 하여 가져왔습니다.”라며 예를 갖추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 때가 서기 372년.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온 날이다. 이어 2년이 지난 374년에는 전진의 왕 부견이 승려 아도를 보내왔고, 소수림왕은 이때부터 사찰을 세우기 위한 대대적인 불사를 진행했다. 왕으로부터 “겸손한 마음으로 예를 갖춰 불상을 대할 것”을 하명 받은 신하들은 “대왕마마께서 특별히 명령하신 불사이니 한 치의 잘 못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사찰 건립 불사에 동원된 인부들을 독려했고, 드디어 이듬해 2월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중국 길림성 집안이 옛 국내성
375년 2월 마침내 고구려 최초, 아니 한국불교 최초의 사찰이 세워진 것이다. 바로 이 사찰이 한국불교에서 불상을 봉안하고 스님이 거주하며 대중에게 법을 설하기 시작한 최초의 절 초문사(肖門寺)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사찰 이불란사(伊弗蘭寺)가 동시에 건립됐다.
소수림왕은 사찰이 건립되자 진나라에서 온 순도를 초문사에 머물게 하고, 전진에서 온 아도를 이불란사에 거주케 하여 사찰을 여법하게 운영할 것을 당부했다. 『삼국사기』에서는 이 대목을 ‘(소수림왕 5년)봄 2월 처음으로 초문사를 지어 순도가 있게 하고,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가 있게 하니 이것이 해동불법의 시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초문사는 일부에서 성문사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 후기의 고승 각훈이 삼국시대부터 당시까지의 고승들의 전기를 정리하여 편찬한 불교 관련 인물역사서인 『해동고승전』에서는 ‘순도가 처음 고구려에 왔을 때 소수림왕이 성문이라고 하는 문에서 순도 스님 일행을 맞이했고, 그래서 그 성문을 헐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기 때문에 성문사(省門寺)로 불렀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 최초의 사찰인 초문사와 이불란사가 세워진 지역은 어디일까.
소수림왕이 왕위에 오른 시기 고구려의 도읍은 국내성이었다. 때문에 당시 고구려와 진나라가 상호 서로의 남과 북이 되는 국경지역의 평화유지에 공감대를 형성, 불교 교역을 통해 우의를 다졌던 상황을 고려할 때 고구려가 진나라의 호의를 받아들여 처음 지은 사찰은 도읍인 국내성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시 고구려 도읍이었던 국내성은 현재의 중국 길림성 집안이다. 이 곳에 한국불교 최초의 사찰 2개가 동시에 세워졌던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이 지역에서 옛 고구려 사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집안 역 앞에 민주유적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이것이 고구려의 절터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천도할 것을 고려해 사찰 두 곳을 모두 지금의 평양에 지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근거 자료가 없는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문헌상 현존 최고는 불갑사
고구려에서 초문사와 이불란사 이후 건립된 사찰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 2년(393)조에 나타난다. 여기에 ‘평양에 9개의 절을 새로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세운 9개의 절은 왕실이나 귀족들만을 위한 절이 아니라 일반 백성을 위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나타난 한국불교 최초의 사찰이 초문사와 이불란사라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찰들이 각기 소유한 사지에 따르면 『전등사본말사지』에 근거해 강화 전등사가 381년 아도 화상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전등사본말사지』 이외의 문헌에서 창건 연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와 『백제본기』의 기록에 따라 385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영광 불갑사가 문헌에 나타난 현존 최고(最古)의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최초의 사찰은
인도 왕사성 죽림정사
불교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사찰은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의 죽림정사다. 북방에 있는 가란타죽림에 최초로 생긴 불교사원이라고 해서 가란타죽원 또는 죽원가람이라고도 한다. 코살라국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함께 불교 최초의 2대 가람으로 불린다.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의 첫 사찰은 75년 건립된 낙양의 백마사로 알려져 있다. 후한 명제 영평 10년에 인도에서 두 스님이 백마에 불경을 싣고 낙양에 들어와서 외국 손님을 주관하는 홍노사에 머물게 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 나라는 고구려 소수림왕 5년인 375년에 세워진 초문사와 이불란사가 최초의 사찰이며, 백제에서는 385년 건립된 영광 불갑사가 첫 번째 사찰로 꼽히고 있다.
이어 신라의 경우 『신라본기 제4권』의 기록에 따라 아도 화상이 지금의 경북 선산에서 전법활동을 하며 숨어 살아온 모례의 초가집을 첫 사찰로 보기도 하나, 공식적으로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해 534년에 착공해 544년에 완공된 흥륜사를 최초 사찰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 19대 눌지왕대(417∼458)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 화상이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경북 구미 태조산 도리사를 신라 최초의 사찰로 보는 시각도 있어, 이 역시 보다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일본최초의 사찰은 588년 건립된 나라현 아스카테라(비조사)로, 부여 왕흥사를 모델로 지어진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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