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국(斯盧國)

진한(辰韓) 12국 가운데 경주에 위치한 소국(小國)으로, 뒤에 신라의 모체가 되었다.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우리 민족에 관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한전(韓傳)에 삼한의 여러 소국의 이름이 나오는데, 나라 이름의 한자 표기는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른 것이다.

<양서(梁書)> 동이전 신라조에 “위(魏)나라 때에는 신로(新盧), 송(宋)나라 때에는 신라(新羅) 또는 사라(斯羅)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사로의 ‘사(斯)’는 우리 말 ‘새’의 음차(音借)이고 신로의 ‘신(新)’은 ‘새’의 훈차(訓借)이며, ‘로(盧)’는 우리 말 ‘내’의 음차이다.

그러므로 ‘사로’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서나벌(徐那伐)’의 ‘서나’나 ‘서라벌(徐羅伐)’의 ‘서라’와 같은 것이다.

‘서(徐)’는 역시 ‘새’의 음차이고 ‘나(那)’는 ‘내’의 음차이다. ‘내’는 평야·도읍·나라의 뜻으로 ‘양(壤)’·‘양(襄)’·‘내(乃)’로도 표기되었다.

또 ‘벌(伐)’은 ‘’·‘벌’의 음차로서 비리(卑離)·부리(夫里)·불(弗)·불[火] 등으로도 표기되었으며, 내와 마찬가지로 평야·나라의 뜻이다.

그러므로 서라벌의 ‘벌’은 ‘나’와 중복 표기된 것이다. 따라서 서라벌을 ‘서벌(徐伐)’이라고도 썼다. 이 ‘서벌’이 오늘날의 ‘서울’로 소리가 바뀐 것이다. 사로국은 오늘날의 경주를 중심으로 한 국가였으며, 이웃의 다른 소국들을 정복해 신라 왕국을 이룩하였다.

한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왕위에 즉위한 이후에 국호를 서나벌()·서라벌()·서벌()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들 명칭과 사로국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사로국은 3세기 중반 무렵부터 진한 소국을 정복하거나 복속시켜 진한 지역의 맹주국()이 되었고, 280년에는 사로국왕이 진한 세력을 대표하여 진()에 조공하기도 하였다.
4세기 중반 이후 사로국의 영역팽창과 더불어 사라()·신로()·신라()란 명칭이 쓰이다가, 503년(지증왕 4)에 신라()라는 국호가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사로국이란 국호가 쓰인 시기는 신라가 경상도지역을 석권한 4세기 중반 이전에 경주를 중심으로 한 소국이었을 때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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