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2대 교주 최시형 처형
1898년 7월21일 동학농민운동의 혁명 논리와 원동력을 만든 2대 교주 최시형 처형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
동학농민운동이란?
동학농민운동은 한국판 시민혁명으로 고종 31년(1894년) 동학당이 주동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조선 후기에 정치의 부패와 과중한 세금, 탐관오리의 행패 등으로 고통 받던 농민들이 외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풍조아래 생겨난 신흥종교가 동학이다.
동학은 단순히 종교적 신앙의 영역을 넘어 농민들의 사상을 뒷받침하고 외국세력을 배척하고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정치적인 세력으로 급격히 전파되었다.
1863년 제1대 교주가 처형당하고 최시형이 2대교주가 되었다. 그는 정부의 탄압을 피하면서 포교활동에 힘을 기울였으며 동학의 주요경전이 용담유사를 정리해 1880년에 발간했다.
1893년 동학지도자 40인과 함께 경복궁 앞에서 복합 상소를 올리며 교조의 신원운동을 펴고, 포교의 자유를 요청했다. 1894년 전봉준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자 처음에 만류하다 이후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의 혁명 논리와 원동력을 만들며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최시형은 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일제에 의해서 패하자 도망하다 1898년 발각 체포되어 그 해 7월21일 서울에서 처형당했다.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전봉준은 유난히 작은 체구를 가져 녹두장군으로 불렸다. 과중한 세금과 근거 없는 죄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는 등 횡포가 심한 탐관오리들에게 분노한 그는 1894년 농민 1천여명을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여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빼앗긴 곡식을 찾아 어려운 농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후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노비 해방 등 농민을 위한 12개 항목을 약송 받은 뒤 휴전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자 전봉중은 1984년 8월 다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지만 신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의 반격으로 동학군은 크게 패하고 전봉준은 1985년 동지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적, 반회세적 농민항쟁이다. 농민이 주축으로 된 운동으로 지배계층에 대한 조선 시대 최대의 항쟁이다.
출처; 인터넷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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