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반도의 불교왕국 ③
말레이반도 중북부 ‘이주민왕국' 반반·등미류·타원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오랜 불교전통의 나콘시탐마랏 사원. 말레이반도의 중북부에 위치하여 벵골만에서 건너온 불교가 말레이반도로 북상하거나 시암만을 건너서 오늘의 태국으로 전래되는 길목이기도 했다.
나콘시탐마랏주의 주도인 나콘시탐마랏은
태국령 말레이반도 남부 인구 10만여명의
작은 규모지만 오랜 행정 중심지다
산스크리트 ‘리고르’ 비문이 발견된 곳으로
비문은 스리비자야의 말레이인이 세운 것
불교 해상제국 스리비자야의 말레이반도
해상 거점이 설정됐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제번기’의 등류미국(登流眉國)이 리고르다
중국 남조 불교유입 길목 반반국
말레이반도 중부권에 랑카수카-크다 왕국이 존립했다면, 그보다 조금 북쪽에 반반국(盤盤國)·타원국(陀沅國)·타화라국(墮和羅國) 등의 소왕국이 확인된다. 이들 나라에 관한 역사적 정보는 흡사 우리가 가야의 제 소국들을 문헌, 고고학 증거물 등으로 꿰어 맞추듯이 애매모호한 지점이 많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들 나라는 인도의 영향을 강력히 받은 ‘이주민 왕국’으로 동쪽으로는 시암만, 서쪽으로는 안다만에 걸쳐져 있었다. 오늘날 나콘시탐마랏(Nakhon Si Thammarat)과 차이야(Chaiya), 안다만에 위치한 타콜라(타쿠아파, Takua Pa)가 그곳이다. 2세기 팔리어 불교경전 <니데사(Niddesa)>에 등장한다.
반반국은 3~7세기 시암만에 위치했으며, 남쪽의 랑카수카와 접했다. 세칭 곤륜(崑崙, kurung)이라 불렀다. 중국 문헌에 곤륜국, 곤륜선(崑崙船), 곤륜노(崑崙奴)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 말레이반도의 바다에 능숙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곤륜국의 대표적인 나라가 반반국이다.
반반국에는 불교사원과 힌두사원이 모두 있었고, 사람들은 바라문서(婆羅門書)를 학습했다. 양무제 원년(529년) 12월과 4년(533년), 5년(534년), 6년(535년)에 반반국에서 4차례에 걸쳐서 사신을 보내고 헌물했다. 남조 진(陳)의 태건(太建)3년(571년)에도 사신을 보냈으며, 수나라 대업(大業)12년(616년)에는 반반국과 단단국(丹丹國)에서 사신이 중국에 들어와 공물을 올렸다. 당나라 정관(貞觀)9년(637년)에도 사신이 들어왔다.
불교가 번성하던 양무제 시기에 상아 불상과 탑, 침담(枕檀) 등을 바쳤으며, 530년에는 상아불상 및 탑 2구, 화제주, 고패, 여러 향약(雜鄕藥)을 바쳤다. 534년에는 보리국(菩提國)의 진(眞) 사리 및 탑 그림(畵塔)을 보내왔다. 진신사리가 들어오는 창구였음을 알 수 있다. 반반국은 중국 남조로 불교가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리고르비문 발견된 나콘시탐마랏
오늘날 나콘시탐마랏주의 주도인 나콘시탐마랏은 방콕에서 600㎞ 떨어진 태국령 말레이반도 남부의 작은 도시다. 인구 10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규모이나 태국 남부의 오랜 행정 중심지다. 산스크리트어로 각인된 리고르(Ligor) 비문(755년)이 발견된 곳이다. 리고르 비문은 스리비자야의 말레이인이 세운 것이다.
불교 해상제국 스리비자야의 말레이반도 해상 거점이 설정됐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리고르와 탐마랏이 동일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시암만을 건너온 상선이 나콘시탐마랏에서 짐을 부리고, 다시 말레이반도 서쪽의 안다만으로 갔을 것이다. 중국과 인도를 오가는 동서무역의 요충지였다. 오늘날 발견된 12세기 도자기편으로 미루어 적어도 그 시기까지 ‘중국-말레이반도-인도’의 무역노선이 유지되고 있었다.
송(宋)의 <제번기>에 등장하는 등류미국(登流眉國)이 리고르다. 진랍 서쪽이며, 백두구(白荳)·전침향속(箋速香)·황랍(黃蠟)·자광(紫) 등이 난다고 했다. 송의 진종 함평 4년(1001년)에 사신 9인을 보내어 내조하고, 목향(木香) 1000근, 놋쇠와 백납 각 100근, 호황련(胡黃連) 35근, 자초(紫草) 100근, 화포(花布) 4단, 소목(蘇木) 1만근, 상아 61주를 진공했다.
스리비자야 말레이반도 항구 차이야
반돈만(Bandon Bay)에 위치한 차이야는 라엠포(Laem Pho)로 알려지는데, 반반국의 가장 오랜 도시다. 남조의 유송(劉宋, 420~479)에 434년, 435년, 438년에 사신을 보냈다. 당시 유송의 수도는 건강(현 난징, 南京)이었으므로 차이야 사신은 바닷길로 올라와서 강을 통해 난징에 당도했을 것이다. 일찍이 푸난의 첫 왕 판시만(Fan Shih-man)에 의해 정복당해 푸난의 말레이반도 창구로 이용되었다. 푸난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7~13세기 불교왕국 스리비자야의 말레이반도 항구였다.
스리비자야 시대에 만들어진 왓프라보롬마닷(Wat Phra Borommthat) 사원이 현재도 존재하며, 와트 롱(Wat Long) 사원의 벽돌 기단이 남아있다. 7~10세기 당(唐) 도자기가 차이야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시암만에서 말레이반도를 관통하여 안다만제도를 거쳐서 도자기가 수출되던 루트다.
수공업 기지였던 카오 삼깨오
탐마랏 북쪽의 시암만에 고대항구 까오 삼깨오(Khao Sam Kaeo)가 있었다. 일찍이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후 100년까지 500여 년간 말레이반도에서 국제무역이 번성하던 유적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말레이 항시(港市) 국가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다. 삼깨오에서 시암만을 가로지르면 건너편 푸난에 닿는다. 무역 중심이 해안선을 따라 형성됐을 때, 동서무역의 교차점은 말레이반도 중부가 중심이었다. 카오 삼깨오는 고대 국제무역도시로서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번영했다. 인도, 그리스-로마 문명이 기원 1세기에 교류했음이 확인된다.
인도와 아시아에서 많은 상인과 숙련공이 모여들었다. 중국 도자기와 베트남 청동기, 로마 공예품이 시차를 두고 거래됐다. 삼깨오 항구유적을 통하여 기원전 1세기에 인도아대륙에서 남중국해에 이르는 교류가 확인된다. 구리에 기반한 공예품은 남아시아, 베트남, 서한(西漢)의 재료 문화에서 유사한 구리합금 전통을 말해준다.
‘밀린다왕문경’에 등장하는 타쿠아파
타쿠아파(Takua Pa)는 앞의 시암만 도시들과 다르게 반대편 안다만의 푸껫섬 북쪽에 위치한다. 건너편 직선거리에 안다만제도가 있다. 인도인 도착지로 여겨지며, 꼬리를 물고 인도인이 나타났다는 증거가 있다. 타쿠아파는 기원전에 그 역사가 시작됐다. 카다몬(향신료)을 뜻하는 ‘Tok Kloa’라고 불렸다. 그만큼 말레이반도에서 나오는 카다몬이 집산됐다.
타쿠아파에 무역상인과 여타 인도인이 정착하여 수바르나 디비파(Suvarna Dvipa)를 5세기경에 세웠다. 타쿠아파는 불교경전 <밀린다왕문경(밀린다팡하, Milindapaha)>에 거대 무역거점으로 등장한다. 좁은 끄라 운하(Isthmus Kra)를 관통하여 반돈만에 이르러 시암, 캄보디아, 안남으로 가는 루트다.
상좌부 불교의 창구였던 단마령
단마령은 남송 원년(1195년)에 중국에 조공했으며, 금 세 덩어리와 금 우산을 바쳤다. 그만큼 금이 많이 나오던 곳이다. 10~13세기에 존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해상왕국 스리비자야에 복속됐다가 전성을 구가하던 13세기에 독립하고 스리랑카를 침략할 정도였다. 13세기 말에는 수코타이 왕국의 간섭을 받고, 14세기 말에는 마자피힛 왕국의 지원을 받은 멜라유 왕국에게 먹힌다.
스리비자야 영향권에 놓였다가 마자피힛을 거쳐서 시암의 아유타이왕국에서 통치했다. 단마령은 상좌부불교의 본향인 스리랑카와 무역과 종교 교류를 했기에 시암의 수코타이가 상좌부 불교국가로 정립하는데 창구 역할을 했다.
주강현 해양문명사가 [불교신문 37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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