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 초상 보물1481호

재 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상갈동 496) 경기도박물관

조선 중후기의 문신 관료인 김유(金楺, 1653~1719)의 초상으로 18세기 초반 경에 가장 유행했던 반우향(半右向)의 단령본(團領本) 전신 교의좌상(全身 交椅坐像) 형식이다. 김유(金楺)는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와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식(埴), 호는 검재(儉齋),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의 문하로 찬수낭관(簒修郎官, 낭관; 조선시대 육조의 각 관아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정랑과 좌랑을 총칭하는 용어)때『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증보하였다. 우상변에 ‘검재김선생화상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 六十四歲時寫)’의 표제가 있어 숙종 42년(1716)의 64세 때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교의자에 걸친 장식 모피(毛皮)가 원형의 표범 무늬가 아니라 긴 줄무늬의 호피(虎皮)인 점, 또한 교의자에 걸친 호랑이 가죽의 호랑이 얼굴 부분을 의답(椅踏) 위의 중앙에 살짝 내비친 뒤 양 발을 의답의 좌우 옆면으로 크게 드러내 강조한 점, 그리고 교의자의 손잡이가 심하게 구부러지고 입체감을 전혀 표현하지 않은 점 등은 18세기 초반의 초상화들에서 전형적으로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1710년대의 단령본(團領本) 전신 교의좌상(全身 交椅坐像)으로는 그리 많지 않은 예일 뿐만 아니라, 회화적인 기량과 예술적인 수준도 뛰어나고,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더구나 18세기 이후 가장 널리 유행한 조선후기 초상화의 가장 전형적인 양식을 이 김유(金楺)상만큼 이른 시기에 이처럼 직접적으로, 그리고 이렇게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예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 유산 > 보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물 1483호  (0) 2019.12.11
보물 1482호  (0) 2019.12.10
보물 1480호  (0) 2019.12.08
보물 1479호  (0) 2019.12.07
보물 1478호  (0) 2019.12.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