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아익 보물1664호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270 기양사
이 책은 명종 8년(1553)에 다시 간행하여 백광홍(白光弘, 1522~1556)에게 하사된 것이다. 원래 이것은 세종 24년(1442)에 처음 간행되었다. 이 책의 편저자 유이(劉履, 1317~1379)는 주자(朱子)를 숭배하는 학자로 주자(朱子)의 뜻에 따라『문선』에 수록된 시에서 212편, 도연명(陶淵明)의 시집을 비롯한 여타 서적에서 34수, 도합 246편의 시를 8권으로 편집하여『선시보주(選詩補注)』라 하였고, 요순(堯舜)이래 진(晉)대에 이르는 옛 가요 42수를 뽑아 2권의『선시보유(選詩補遺)』를 엮었다. 이어서 당송(唐宋)시대 시인 13명의 시 132수를 뽑아『선시속편(選詩續編)』5권을 엮었다. 이 세 책에는 기존의 주석을 참고하고 부족한 부분은 자신의 의견으로 주석을 달고 이를 보주(補注)라 하였는데, 주석의 체재는 주자(朱子)가 시경의 집전(集傳)을 편찬한 방식을 따랐다. 이들 3편 15권(420편)은 인간의 성정 도야에 있어서『시경(詩經)』의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묶어서「시경의 나래(보조)」라는 뜻인『풍아익(風雅翼)』으로 명명하였다. 문학을 너무 철학적으로 해설한 점에서 후대의 평가는 높지 않지만 성리학이 학문과 정치의 중심이었던 조선시기에는 중요한 시학(詩學) 교과서로 기능하면서 널리 읽혀졌고,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제15권 말에는 주자발(鑄字跋) 3편 <권근(權近)의 계미자(癸未字) 주자발(鑄字跋), 변계량(卞季良)의 경자자(庚子字) 주자발(鑄字跋), 김빈(金鑌)의 갑인자(甲寅字) 주자발(鑄字跋)>과 함께「정통칠년(正統七年, 1442) 육월일인출(六月日印出)」이라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초주갑인자로 인출된 책이기는 하지만 판면을 살펴보면 보자(補字)가 다수 혼입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기록보다 뒤인 내사기에 기록된 1553년 경에 인출된 책으로 판단된다. 조선 전기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서적 중 규모가 방대하고 시학(詩學)의 교과서적인 역할을 담당한 점에서 시문학의 연구 및 도서 출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울러 국내에 전존하는 유일한 완질본이다. 책 머리에는 지원(至元) 23년(공민왕 12, 1363년) 11월에 쓴 금화(金華) 재량(載良)의 풍아익서(風雅翼序)가 있고 지정 기사(至正 乙巳; 공민왕 14, 1365년) 3월 초에 쓴 하시(夏時)의 선시보주서(選詩補註序), 지원(至元) 21년(공민왕 10, 1361년) 춘 12월 16일에 쓴 사숙(謝肅)의 서(序)와 황자남(黃子南)의 풍아익서(風雅翼序)와 선시보주(選詩補註) 범례가 있다. 또 면을 달리하여 풍아익선시총목(風雅翼選詩總目)이 있고, 행을 바꾸어 상우유리탄지집선(上虞劉履坦之輯選), 신안(新安) 김덕현(金德玹) 인본교정(仁本校正), 건양현(建陽縣) 지현(知縣) 하경춘(何景春) 손봉간(損俸刊)이라 하여 노작 사항을 밝힌 다음 선시보주(選詩補註) 목록이 시작된다. 본문의 책 머리에는 선시 권제일(選詩卷第一)이라 하여 권두제목이 있고 행을 바꾸어 아래에 상우 유리 보주(上虞劉履補註)라 하여 노작자의 이름이 있다. 보유편은 상하 2권 1책으로 책머리에 선시보유 목록이 있고 이어 ‘선시보주(選詩補註)’라는 권두제목이 표기되었으며 선시보주(選詩補註) 권하의 제서(題署) 다음에는 상우 유리 교선이라고 쓰여 있다. 속편은 5권 2책으로 책머리에 선시속편 목록이 있고 이어서 1334년(갑자, 충숙왕 11) 10월에 쓴 신안후학 호병문(胡炳文)의 감흥시통서(感興詩通序), 감흥시통(感興詩通) 범례가 있다. ‘선시속편’ 권 제1이라는 권두 제목 아래에는 상우 유리 교선이라는 노작가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속편의 권5에는 노작자를 신안호병문 중호통(新安胡炳文仲虎通), 상우 유리 탄지보주(上虞劉履坦之補註), 신안 김덕현 인본집록(新安金德玹仁本輯錄)이라 차례로 표시하였다. 끝에는 1437년(正統丁巳, 세종 19) 에 쓴 지어(識語)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