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흠 예서 경재잠 보물1678호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송문흠(宋文欽) 예서(隸書) 경재잠(敬齋箴)」은 한정당(閒靜堂) 송문흠(宋文欽, 1710~1752)이 1751년 여름에 형 송명흠(宋明欽)의 늑천계당에서 여일(汝一)을 위해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을 쓴 것이다. 한 줄에 4자씩 모두 44행에 써서 가로로 길게 배접한 상태인데 종이바탕을 살펴보면, 원래 한 줄에 8자씩 쓴 띠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글씨는 자간(字間)을 접어 일정한 틀 안에 한 글자씩 썼는데, 동한시대의 <조전비(曺全碑)>를 바탕으로한 부드럽고 유려한 필치이다. 그의 예서풍은 동시대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필적이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의 문신. 송문흠(宋文欽)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사행(士行), 호는 한정당(閒靜堂)으로, 1733년(영조 9)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1739년(영조 15) 음보(蔭補)로 장릉참봉(長陵參奉)이 되고, 이어 시직(侍直)·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형조좌랑(刑曹佐郞) 등을 거쳐 문의현령(文義縣令)에 이르렀다. 문장과 시(詩)에도 뛰어났으며, 글씨는 특히 예서를 잘 써서 전서의 이인상(李麟祥)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