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경루 방회도 보물1879호
소 재 지; 서울 중구 필동로 1길30(필동 3가 26-1) 동국대학교 박물관
「희경루 방회도(喜慶樓榜會圖)」는 1546년(명종 1) 증광시(增廣試,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실시된 과거시험) 문․무과 합격 동기생 5명이 1567년(선조 즉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喜慶樓)에서 만나 방회(榜會, 과거 합격자 동기모임)를 가진 기념으로 제작한 기년작(紀年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 작품) 계회도(契會圖, 관료 등의 친목 도모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표제는 전서체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적었고, 좌목에는 품계와 관직, 이름, 자, 본관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쓰여 있으며 이에 의하면 참석자는
1)통정대부 행광주목사 최응룡 견숙 본전주(通政大夫 行光州牧使 崔應龍 見叔 本全州)
2)자헌대부겸전라도관찰사 강섬 명중 본진주(資憲大夫兼全羅道觀察使 姜暹 明仲 本晉州)
3)전승문원부정자 임복 희인 본나주(前承文院副正字 林復 希仁 本羅州)
4)어모장군전라도병마우후 유극공 경숙 본 충주(禦侮將軍全羅道兵馬虞侯 劉克恭 敬叔 本忠州)
5)통훈대부 전행낙안군수 남효용 공숙 본의령(通訓大夫 前行樂安郡守 南效容 恭叔 本宜寧) 등 5인이다.
발문에서는 1546년(명종1) 과거에 함께 합격한 동기생들이 각자의 근무지를 따라 흩어진 후 만나지 못한지 20여년이 되었음을 회고하면서, 그 동안의 그리움과 만남에 대한 감회를 적어, 관계에 함께 첫 발을 들여놓은 동료들 간의 친밀한 공감대가 엿보인다. 나아가 최응룡(崔應龍)을 비롯한 다섯 사람의 앉는 위치마저도 서술하여 이 발문이 방회가 행해졌던 현장의 모습에 근거하여 서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장방형의 화면에는 왼쪽에 희경루(喜慶樓)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희경루(喜慶樓)의 담장을 비롯한 주위경관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층으로 축조된 희경루(喜慶樓) 안에는 이 모임의 주인공들과 여러 명의 기녀들이 자리한 가운데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다. 서열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신분에 따라 관모(冠帽)를 달리하고 있으며, 기녀들은 당시의 유행대로 고발(高髮)을 하고 있다. 한편 희경루(喜慶樓)는 축대를 쌓은 대위에 1층은 기둥을 세우고, 2층에 누를 올린 것으로 그림 속 누정의 아래층에는 하인들이 쉬고 있으며, 누정의 왼쪽에는 피리를 부는 악공들이 무리지어 있다. 축대 아래쪽에는 나장과 같은 군졸들이 도열해 있다. 희경루(喜慶樓)의 동쪽 공간에는 민가가 인접해 있으며, 그 앞의 넓은 터에 활터가 있는데, 주변의 경관 역시 사실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하고자 했음을 살필 수 있다. 신묘생진시(辛卯生進試, 1531년)의 동방들이 1542년에 만나 제작한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蓮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와 함께 현전하는 16세기의 방회도 2건 중 하나이다. 방회도(榜會圖)는 16, 17세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희경루 방회도(喜慶樓榜會圖)>는 1550년의 <호조낭관계회도> 및 <연정계회도>와 함께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례이다. 대부분의 16세기 계회도는 수묵화로 그려졌으며 채색화로 그려진 경우는 드문 편이다. 이 <희경루 방회도(喜慶樓榜會圖)>는 모임의 주체와 장소 등을 고려해 볼 때 전라도 광주 지역의 화사(畵師)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아 지방화단에서 그려진 채색계회도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제목, 그림, 좌목, 최응룡(崔應龍)으로 추정되는 ‘완산후인(完山後人)’이 쓴 발문까지 계회도의 형식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다. 인물을 묘사한 필치는 매우 생기 있고 활달하며 자신감이 넘친다. 또한 비슷한 자세의 인물을 같은 모양으로 판에 박은 듯 반복해서 그리는 투식적인 면이 적다. 희경루 건물 묘사에서도 보이는 대로 그린 듯한 꾸밈없는 필치를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희경루 방회도(喜慶樓榜會圖)>는 제작시기, 양식적인 특징, 회화적 가치 면에서 가치가 크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