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 수대장존자도

제125 진보장존자도

제145 희견존자도

제170 혜군고존자도

제357 의통존자도

제427 원원만존자도

고려 오백나한도 보물1883호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는 부처의 제자 중 아라한과(阿羅漢果, 수행을 완수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 자리로, 성문 사과의 가장 윗자리를 이름)를 얻은 500명의 나한을 한 화면에 한 존자씩 그린 그림으로, 남아 있는 예가 매우 드물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려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중 모두 6폭으로, 제92 수대장존자(守大藏尊者), 제125 진보장존자(辰寶藏尊者), 제145 희견존자(喜見尊者), 제170 혜군고존자(慧軍高尊者), 제357 의통존자(義通尊者), 제427 원원만존자(願圓滿尊者)이다. 화기를 통해 1235~36년(고려 고종 22~23) 무렵에 적병(敵兵)의 속멸(速滅), 국토의 태평, 국왕의 장수 등을 발원하며 김의인(金義仁)의 주관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어 고려 불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시대 나한신앙은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그 신앙의 내용을 불교회화라는 조형언어로 시각화한 것은 몇 폭밖에 남아 전하지 않는다. 제92 수대장존자(守大藏尊者)는 두손으로 방광하는 사리병을 받쳐 들고 있으며, 제125 진보장존자(辰寶藏尊者)는 신통력을 부리는 모습이며, 제145 희견존자(喜見尊者)는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사유에 잠긴 모습이며, 제170 혜군고존자(慧軍高尊者)는 향완에 향을 피우고 선정에 잠긴 모습이며, 제357 의통존자(義通尊者)는 여의를 들고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며, 제427 원원만존자(願圓滿尊者)는 병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모습 등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이와같이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는 대체로 야외의 암산으로 배경으로 하여 깊은 산중에서 수행하거나 신통력을 부리는 극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들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는 남아 있는 화기분석을 통해 을미년(乙未年)과 그 다음해인 병신년(丙申年)에 걸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화풍과 도상 등으로 미루어 1235년~1236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제작의 주관자는 대정(隊正) 김의인(金義仁)으로 확인된다. 크기는 대체로 세로 55~60cm 내외, 가로 35~40cm 내외의 견본(絹本) 위에 그려졌으며 입술이나 머리, 의자의 장식 직물, 가사, 지물 등 극히 일부에 제한적으로 채색을 사용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수묵을 기본으로 하여 담백한 맛을 준다. 특히 가사의 조와 원형의 두광 등에는 발묵법으로 무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표현하였으며, 목깃이나 소매 등 가사장삼 사이로 새하얀 속옷을 드러냄으로서 맵시 있고 세련된 옷차림을 연출하였다. 붓놀림은 활달하고 번잡하지 않은 담백하고 세련된 선묘를 보여준다. 광배와 기물, 가사의 조(條)와 문양 등에는 화려한 금니를 적극 사용한 점은 고려불화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암석의 표현에서 중앙부를 비워 조광(照光)효과를 주는 등 이른바 이곽파(李郭派) 화풍이 가미되어 있어 고려시대 산수화의 경향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모든 작품에서 존자의 차례와 존명(尊名)을 명시하여 도상의 이해를 돕고 있고, 화기를 통해 제작시기, 발원자, 그리고 발원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고려시대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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