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보물2021호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보령 성주사지(聖住寺址) 동(東) 삼층석탑(三層石塔)」은 성주사지(聖住寺址)에 남아있는 4기의 탑 가운데 하나다. 847년 낭혜화상(郎慧和尙) 무염((無染, 800~888 신라 후기의 승려)이 지은 성주사(聖住寺)는 17세기까지 명맥이 이어지다가 조선 후기에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사(聖住寺)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郎慧和尙)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聖住寺)’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절터만 남아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 307호)에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8호)와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47호) 등 1기의 탑비와 3기의 석탑이 이미 국보와 보물 등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동 삼층석탑은 금당 뒤쪽에 있는 다른 2기의 석탑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국내에는 가람이 이렇게 배치된 예가 없다. 따라서 금당 전면에 오층석탑 1기를 조성하여 1탑 1금당(하나의 탑과 하나의 금당을 남북축선상에 나란히 배치한 형태) 형식의 가람배치를 조성한 이후 석탑 3기를 다른 곳에서 옮겨와 뒤쪽에 추가로 배치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금당 뒷쪽의 3기의 석탑 중 서·중앙 석탑 2기는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동 삼층석탑은 조성 양식으로 보아 다른 2기의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말기에 같은 장인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 높이는 4.1m로 2층 기단위에 3개의 층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단 상부에 괴임대 형식의 별석받침(별도의 돌로 만든 받침석)을, 1층 탑신 전‧후면에 문고리와 자물쇠가 표현된 문비(문짝 모양)가 조각된 점 등으로 볼 때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