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대 보물2046호
소 재 지; 강원 강릉시 경포로 365(저동 94)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이다. 「강릉 경포대(鏡浦臺)」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정(朴淑貞)에 의해 신라 사선(四仙)이 놀던 방해정(放海亭) 뒷산 인월사(印月寺)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에 강릉부사 한급(韓汲)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1873년(고종 10)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다시 세운 뒤 1934년, 1947년, 1962년에 보수하였다. 태조(재위 1392∼1398)와 세조(재위 1455∼1468)는 친히 이 경포대(鏡浦臺)에 올라 사방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앞면 5칸·옆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모두 4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으며 마루의 높이를 달리하는 입체적 평면을 하고 있다. 이름인 ‘경포대(鏡浦臺)’ 전자체(篆字體) 현판은 정조 시절 전서와 예서의 대가였던 유한지(兪漢芝)의 글씨이고, 해서체(楷書體) 현판은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의 글씨이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글이 걸려있다. ‘제일강산(第一江山)’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제일(第一)’과 ‘강산(江山)’의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볼 때 ‘강산(江山)’은 뒷날 다른 사람이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강릉 경포대(鏡浦臺)」는 고려 중기 김극기(金克己)의 「경포대(鏡浦臺)」라는 시와 「강릉팔영(江陵八詠)」, 그리고 고려 말 안축(安軸)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시작으로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이후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문학작품에 소재가 되었던 공간이다. 경포호(鏡浦湖)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가 돋보이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제일경(第一景)으로, 강릉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500년 이상 원래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뛰어난 경관의 조망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루를 3단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누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정자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구조다. 경포대(鏡浦臺)는 일반 누정과 달리 내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마루를 기능에 따라 3단으로 구성하였으며, 누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것은 유례가 없으며, 특히 가장 높은 누마루의 형태가 머름대(창문 아래 높은 문지방인 머름 밑에 가로 지른 나무) 형식을 취했고 아래의 누마루는 계자난간(위로 올라갈수록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난간으로 계자다리가 난간대를 받치고 있다)을 가설한 형식 또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성이다. 이와 같이 시대적 상황을 공간과 해당 부재가 흔적으로 지니고 있는 경포대는 조선시대의 것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후기의 정자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