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향교 대성전 보물2090호
소 재 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07-9(교동 43)
「수원향교(水原鄕校) 대성전(大成殿)」은 1789년(정조 13) 읍치(邑治, 조선시대 지방 고을의 행정이 행해지는 곳) 이전에 따라 이건했으며, 정조의 어명을 받아 1795년(정조 19) 2고주 7량가 20칸 규모로 다시 지은 건물이다. 대성전(大成殿)의 규모는 서울 문묘, 나주향교, 상주향교, 제주향교, 대정향교와 함께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경기도 내 향교 대성전(大成殿)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특히, 향교가 현 위치로 이건되고 대성전(大成殿)이 새로 지어지는 과정은 당시 공사보고서라 할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등의 문헌에 상세히 전한다. 전체적인 구조를 이루는 가구법이나 주요 부재의 치목(治木)기법, 공포와 화반(포와 포 사이에 놓여 서까래 종류인 장혀를 받치고 있는 부재)의 간결한 의장기법 등은 조선후기 익공식(翼工式, 창방과 직교하여 보 방향으로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유형) 건축의 완성단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18~19세기 조정에서 주도한 관영건축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수원향교(水原鄕校)는 원래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와우리에 있었으나, 수원도호부의 향교로서 18세기 말 읍치(邑治)를 이건하면서 향교도 옮겨 다시 지은 독특한 사례로 신읍은 정조가 주도한 화성 축성과 함께 화성유수부로 승격되었는데 서울 다음으로 중요시된 도시로 변모하며 유수부의 위상에 맞춰 향교 역시 격식을 충실히 갖춘다. 목공사를 맡은 목수를 특정할 수 있으며 이 목수가 지은 다른 사례와 비교를 통해 목수의 기법과 구조, 세부의 상관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건축사의 기술적 변천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건물이다. 따라서 수원향교(水原鄕校) 대성전(大成殿)은 조선시대 향교건축 중 국가에서 주도한 관영건축으로는 보기 드문 사례이며, 대지 조성부터 기단, 목조 가구구성, 지붕, 세부 의장에 이르기까지 전국단위에서 동원된 기술자들이 양질의 재료를 솜씨 좋게 가공하여 적절한 비례로 완성한 건물이므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지정가치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