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전

동무

서무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보물2096호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신봉2길 111(신봉동 203-1)

「상주향교(尙州鄕校) 대성전(大成殿)·동무(東廡)·서무(西廡)」는 임진왜란 후 1610~1612년 사이에 재건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수리과정이 있었지만 규모와 구조, 형태는 조선중기 건립 당시의 원형을 대체로 잘 간직하고 있다. 대성전(大成殿)은 1610년(광해군 2)과 1617년(광해군 9) 중건 이후 큰 변형 없이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대설위(大設位, 조선 시대에 관찰사가 상주하는 주의 행정구역에 취해진 설위 형식) 향교의 평면과 구조형태, 세부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성전(大成殿)의 5칸 전퇴개방형 규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대성전(보물 제141호) 다음으로 큰 제주향교 대성전(보물 제1902호)과 같은 규모다. 조선 시대 향교의 기능에 따른 건물과 배치구성, 지방행정체계에 대한 설위(設位)형식이 지역별로 시기적 변화양상이 있었음을 밝힐 중요한 건축사적 특성을 가진 건물로 조선 중기 이후 향교 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주향교(尙州鄕校)」는 기록상으로는 고려 고종 34년(1247년)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최자(崔滋)가 쓴 「보한집(補閑集)」에 알려지며, 그 후 1486년 목사 강구손(姜龜孫)이 대성전, 루, 동재 등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때 대대적인 복구가 이루어졌고, 이후 중수와 일제강점기 때 기능이 바뀌면서 창호 등에 변형이 있었으나, 당시의 양식과 배치를 유지하고 있다. 동무(東廡)·서무(西廡)는 1612년(광해군 4)에 창건된 이후 몇 차례의 수리 과정이 있었지만 규모 및 구조형태는 조선중기 창건 당시의 원형을 대체적으로 잘 간직하고 있다. 정면 10칸, 측면 1.5칸으로 면적은 135㎡인데, 서울 문묘 동무·서무, 경주향교 동무·서무 다음으로 큰 규모로, 기단과 처마도리를 경사지에 맞춰 건물 전체 높이는 같게 하고, 양 단부의 횡 방향으로 긴 넓적한 자연석 초석 위에 처마도리를 받치는 보조기둥을 세운 가구 구성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기단과 창호, 공포, 대공, 주두와 소로 등에서 조선 중기 이후 향교 건축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대성전과 동무·서무는 건축 연혁이 명확하고 조선중기에 중창된 뒤 위치의 변경이 없으며, 대체적으로 당시의 구조양식 등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정형화되고 엄격한 배치구성이 돋보이며, 문묘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경사 지형을 고려한 탁월한 입면구성을 갖추고 있다.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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