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

 

사경보까지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일의 사경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조선, 1415년, 36.2×14㎝). 보물로 지정됐다. ① 백지묵서묘법연화경 7권. ②1권 금니변상도 부분. ③ 7권 조성기 부분.

사경보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유일한 사경
 
책 첫머리 각 권 ‘금니변상도’
표지부터 내용까지 훼손 없는
완전한 사경은 흔치않아 주목
각 권마다 색을 달리한 덮개보
자수 솜씨 또한 정교하고 섬세
조선시대 사경 가운데 ‘대표작’

전북 부안 능가산 관음봉 아래 자리한 내소사는 봄이 오는 길목에 더욱 정겹고 아름답다. 일주문에서 피안교에 이르는 길에는 전나무가 쭉 뻗어있다. 사계절 늘 푸른 이 숲길을 나무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면 소란했던 마음도 어느덧 고요해진다. 일주문 밖 할아버지 당산나무의 짝이라고 알려진 천년 된 할머니 당산나무는 훌쩍 지나버린 세월을 품고 앞마당을 할머니의 눈길로 고즈넉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두 새롭게 소생하는 사찰, 내소사
내소사(來蘇寺)는 633년(무왕 34) 혜구(惠丘)스님이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창건하였다. 이후에 사찰명이 연유는 정확하지 않으나 소래사에서 내소사로 바뀌었다. 내소사는 ‘모두 새롭게 소생하는 사찰’이라는 의미이니, 이 절에 오는 모든 중생들에게 새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와 힘을 주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변산반도 남단에 있는 내소사에는 중요한 문화재가 많이 전하고 있어서 사찰의 역사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靑旻)대사가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건물은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오로지 나무를 깎아 서로 끼운 독창적인 기법으로 건축한 조선 중기의 대표 전각이다. 법당 내부의 후불벽 뒤에 그려진 ‘백의관세음보살도’는 규모가 크고 훌륭하다. 또한 불전 앞문을 장식한 꽃살문은 연화, 국화 등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함께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내소사는 <법화경>에 의거한 법화사상을 주로 하는 사찰로 주불전이 대웅전이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소사에는 조선 초기에 조성한 매우 귀한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來蘇寺 白紙墨書妙法蓮華經)’이 남아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성보로 보존상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법화경>은 ‘경전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대승경전 세계의 중요한 기본틀을 구성하면서 이후의 다른 대승경전 발전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묘법연화경(Saddharmapuṇḍarῑka-sūtra)>을 줄인 것으로 그대로 풀이하면 ‘석가여래께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신 연꽃과 같은 가르침을 적은 경전’이란 뜻이다. <법화경>은 한국에서 유통된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가운데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이 가장 많이 유통되었으며, 전체 7권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경보. 비단에 놓은 자수 솜씨가 정교하고, 섬세하며 아름답다.
 
포갑ㆍ사경보까지 온전히 전해
조선 초기에 제작된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조성연대(1415년)와 발원자 등의 기록이 함께 남아 있으며, 글씨와 변상도의 그림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워 더욱 중요하다. 또한 법화경 전체 7권 28품인 한 세트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이 사경을 보호하고자 덮었던 포갑과 사경보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사경(寫經)인데, 사경은 말 그대로 베껴 쓴 경전을 말한다. 불교 경전은 사경과 활자를 이용하여 인쇄한 판경(版經)으로 구분된다. 사경은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 전하고자 조성되었다. 그러나 이후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경전을 대량으로 유포할 수 있게 되면서, 사경은 전법(傳法)이나 포교(布敎)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경전에 대한 예경과 불제자가 이를 베껴 쓰면서 공덕을 쌓는 신앙의 방편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지게 되었다.

사경은 먹으로 쓴 것과 금 또는 은으로 쓴 것이 있는데, 먹으로 쓴 것을 묵서경(墨書經), 금 또는 은으로 쓴 것을 금자경ㆍ은자경(金字經ㆍ銀字經)이라 한다. 현존하는 사경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은 삼성미술관 소장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755년)’이다. 이 사경에는 조성기가 전하고 있어서, 사경을 할 때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음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귀족들이 금ㆍ은자사경(金ㆍ銀字寫經)을 주로 제작하였다. 전문적으로 사경을 하는 스님과 장인들이 만든 수준 높은 사경들이 전해지는데, 그 섬세함과 정교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조선 초기에도 고려시대를 답습하여 사경을 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사경에 관한 기록을 여러 번 적고 있어 당시에도 사경이 불교를 믿는 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수행과 공덕의 방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은 남편의 명복 발원 조성
조선시대 사경 가운데 대표작이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이다. 총28품의 법화경의 내용을 7첩의 흰 종이에 먹으로 옮겨 쓴 것이다. 마지막 권인 권7의 끝에는 ‘금이씨정양인유근지상(今李氏丁良人柳謹之喪), 애부자승(哀不自勝), 경사영문(敬寫靈文), 이천명복(以薦冥福), 추원지성기천천재(追遠之誠豈淺淺哉), 유씨지청승심가필야(柳氏之淸升審可必也), 시영락을미(1415)칠월일발(時永樂乙未 七月日跋)’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태종 15년(1415)에 이씨부인이 죽은 남편 유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지에는 책의 명칭을 중심으로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경전이 시작되기 전의 책 첫머리에는 각 권에 해당되는 여러 품의 내용을 금으로 그린 변상도(金泥變相圖)가 있다. 완전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보기 드문 작품으로, 이렇게 표지로부터 내용에까지 조금도 훼손이나 탈락이 없는 완전한 사경은 흔하지 않다.

경전은 가로로 펼치는 두루마리 형태로 종이나 비단을 이어 붙여서 왼쪽에 축(軸)을 대고 말아서 묶는 형태의 권자본(卷子本)이 있다. 다른 형식으로 마치 병풍을 접듯 적당한 폭으로 접어 앞뒷면에 표지를 붙인 형태로 만든 절첩본(折帖本)이 있다.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절첩본 형식으로 표지에는 금은니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낱장들을 한 장씩 포개어 놓고 우측에 실로 꿰매는 일반고서의 책 형태인 조선시대의 선장본(線裝)보다 앞선 시기인 고려와 조선 초기 시대의 경전을 만든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내소사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사경을 보호하기 위한 포갑과 사경보가 유일하게 모두 남아 있다. 포은 병풍처럼 펴지는데 앞과 뒤에 황, 꽃, 당초, 그리고 구름 등의 무늬를 표현한 직물을 배접하였다. 각각의 권마다 색을 달리한 천에 섬세하게 자수를 넣은 사경 덮개보(褓)는 비단에 자수로 문양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자수 솜씨가 정교하고, 섬세하며 아름답다. 조선 초기까지의 자수품은 남아 있지 않아, 이 덮개보는 국내 유일한 작품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모두 새롭게 소생하는 사찰” 내소사에 들러 전나무숲길을 걸으며 작심삼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다잡아야겠다.

이분희 문화재전문위원ㆍ불교중앙박물관 팀장 [불교신문37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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