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과 공(空)을 떠난 수륙사찰 월출산 강진 무위사
“천년의 불화가 어두운 눈 뜨게 하고
한 잔의 차는 나른한 잠 깨우는구나”
강진 무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불과 후불벽화. 좌우 대칭으로 반가부좌를 한 아미타불의 협시보살 모습이 이채롭다. 후불벽화인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국보로 승격됐다.
무위사(無爲寺)는 월출산 남쪽에 부처님이 달처럼 나타나듯 인연 따라 생겨난 법이 아니어서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허공처럼 항상 존재하는 사찰이다. 무위(無爲)는 어떤 원인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 아닌, 생멸을 떠난 열반의 경지를 말하는데, 무위사는 더욱 낱낱의 행위마다 집착도 없고 더 이상 구할 여지도 없이 불도(佛道)에 들어맞는 무작위의 행위가 극락보전 전각과 불상, 불화 등에 남아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 삼존벽화 국보313호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13호. 조선초기 불교건축을 대표하는 불전으로 단아한 모습의 어머니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위사는 1407년 조선 태종이 지정한 88곳의 대가람 자복사(資福寺) 가운데 하나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불심 깊은 효령대군이 적극 동참하여 1430년에 건립한 극락보전(국보)은 보배로 장엄된 극락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허튼 쌓기로 자연스런 돌 위에 깔끔하게 돌을 다듬어 올린 가구식 기단은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단층 겹처마 주심포 맞배지붕과 나뭇결이 드러난 소슬 빗살문에서는 곱게 머리빗은 어머니의 조용하고 단정한 모습이 느껴진다. 극락보전 외벽의 화려한 보아지뿐만 아니라 종보(마룻보)를 받치는 화반 대공 속에 피어난 한줄기 연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멋을 전해주고 있다.
극락보전 내부 수륙재 공간으로 장엄
극락보전 외벽의 화반대공 연꽃 조각.
조선 초에는 망자추복 및 극락왕생과 관련한 예참신앙이 성행하였다. 그 중 수륙재를 비롯하여 영가천도와 관련된 의식이 많이 설행됨에 따라 1470년 무렵부터는 국가의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되었다. 1476년에는 극락보전의 내부를 수륙재를 위한 공간으로 장엄하기 위해 불단과 불단 위 보개(寶蓋), 후불벽, 마루 등을 고쳤다. 특히 후불벽화(국보)의 아미타불의 얼굴은 봉황의 눈매에 둥글고 단정한 모습인데 머리의 육계 위에는 붉은 정상계주와 하품중생인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두광과 신광이 연결된 보주모양의 3단 광배(光背)는 꽃무늬와 불꽃무늬로 화려하다.
본존불 좌우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병을 든 관세음보살과 조의가사(條衣袈裟)에 두건을 쓰고 육환장과 명주(明珠)를 든 지장보살이 선채로 협시하고 있다. 투명한 겉옷과 치마 끝단의 구불구불한 옷 주름, 부드러운 색채 등은 고려불화를 계승하였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신령스런 기운이 가득 찬 가운데 화면의 상단 좌우로는 6인의 아라한들이 얼굴과 가슴 윗부분만 드러냈다. 특히 얼굴의 백호와 매부리코는 깨달음을 이룬 선승의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다시 그 위에는 아미타불 정수리로부터 나온 광명이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운데 좌우로 2명의 타방불이 극락세계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이 벽화는 대선사 해련 등 3인의 스님들이 조성하였는데 양반에서 노비에 이르기까지 시주에 참여했다.
무위진인 경계일까 … 아미타삼존불
극락보전에는 1478년 조성한 아미타(무량수)삼존불(보물)을 모셨다. 중앙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122cm)은 원만한 이목구비에 미소를 머금고, 하품중생인으로 법을 설하는 모습이다. 좌우보살은 살아서 중생의 고통을 뽑아주는 관세음보살과 죽어서는 모든 지옥의 고통을 소멸시켜주는 지장보살을 모셨다. 그만큼 수륙사로서 의미가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한쪽 발을 아래로 내린 것은 편안한 모습의 보살과 참회하는 자가 서로 감응함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한 유희좌(遊坐)의 모습이다. 관세음보살(146cm)은 좌측 발을 아래로 내렸고 양손위에 버드나무가 꽂혀있는 정병을 얹은 모습이다. 지장보살(140cm)은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오른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을 짚은 모습인데 좌우 대칭 반가부좌를 하고 있어 이채롭다. 어느 사찰에서도 양 협시보살이 이와 같은 모습을 한 경우를 본 적이 없어 오직 무위진인(無爲眞人)만이 할 수 있는 경계라 감흥이 크다.
조선 전기에는 <법화경>과 <지장보살본원경>이 널리 간행되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백 천만 억 중생이 여러 가지 고통을 받을 때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한다”고 했으며, 지장보살본원경 ‘견문이익품’에 “지장의 형상을 보거나, 한번 명호를 듣거나, 보거나, 예배해도 삼악도를 벗어나고 공양을 하면 이익은 한량없을 것”이라 하였으니 참회를 통해 살아서나 죽어서나 모든 고통을 여의고 극락에 들 수 있다는 것은 중생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환상적인 즐거움이다. 그런 까닭에 극락세계 교주인 무량수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모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무위사 불화의 백미 백의관음도
극락보전 불단 뒷벽 백의관음도. 활기 넘치는 필치 속에 남성적인 당당한 체구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길을 끈다.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보물1314호
무위사 불화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불단 뒷벽의 백의관세음보살도(1476년)이다. 활기 넘치는 필치 속에 남성적인 당당한 체구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맑고 시원한 얼굴로 시선은 아래로 향해 늙은 스님을 바라보고 있다. 중생의 원을 들어주려고 급작스럽게 나타나셨는지 머리 위에 쓴 오른쪽 백의와 왼쪽 팔 근처의 백의가 힘차게 펄럭인다. 이마의 보관에는 아마타불을 정대하고 콧수염은 八자 모양으로 약간 근엄함을 보여주지만 목과 가슴에는 화려한 구슬로 장식하여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고 있다. 양손은 교차시켰는데 왼손엔 황금색 정병을 들고 오른손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모습이다. 불투명한 백의는 중생의 고통을 모두 해결해주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
보통 백의관음은 대나무를 배경으로 버들가지를 정병에 꽂은 바위에 반가부좌로 앉고 그 옆엔 선재동자가 합장한 채 질문을 하는 수월관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무위사 백의관음은 버드나무가지를 들고 서있는 모습과 하단 좌측에 늙은 스님이 두 손을 모아 경배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스님 뒤에는 한 마리 청조(靑鳥)가 있어 의상법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설화(삼국유사)의 내용을 표현했다. 우측에는 “바닷가 높은 바위 아득한 곳, 그 가운데 낙가봉이 있어 큰 성인은 머무름 없이 머무르고 보문은 만나도 만남이 없습니다. 밝은 구슬은 제가 지니고자함이 아니지만 청조와 내가 서로 만났습니다. 오직 바라옵건대 푸른 물결 위에서 친히 만월과 같은 모습 뵙도록 하옵소서”하고 관세음보살을 찬탄하는 게송이 묵서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는 무위사에 묵으며 후벽 불화를 보고 이렇게 극찬했다. “천년의 불화가 어두운 눈을 뜨게 해주고 스님이 건네는 한 잔의 차는 나른한 잠을 깨우는구나.” 무위사 극락보전 전각, 불상, 벽화는 색(色)이지만 색이 아니고 공(空)이지만 공이 아닌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아미타불과 보살, 나한이 구름 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의 ‘아미타내영벽화’(무위사 극락전 내벽 사면벽화 보물1315호)
아미타삼존불벽화(무위사 극락전 내벽 사면벽화 보물1315호)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 37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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