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종1(毅宗一) 3년
〈기사〉 3년(1149) 봄 정월 갑신. 초하루 조하(朝賀)를 생략하였다.
임진. 수문전(修文殿)에서 7일간 제석도량(帝釋道場)을 열었다.
병신. 방자수(方資壽)를 공부상서 신호위상장군(工部尙書 神虎衛上將軍)으로 삼았다.
정유. 연등회(燃燈會)를 열고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계묘. 왕태후(王太后)에게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올리고 강안전(康安殿)에서 곡연(曲宴)을 베풀었다.
무신. 군대를 사열하였다.
기유. 왕이 친히 내전(內殿)에서 27위 신에게 초제(醮祭)를 지냈다.
2월 정사. 군대를 사열하였다.
갑자. 왕이 친히 구정(毬庭)에서 초제(醮祭)를 지냈다.
정묘. 왕이 외제석원(外帝釋院)에 행차하였다.
경오. 날래고 용맹한 기사(騎士) 18인을 뽑아 후정(後庭)에서 격구를 하게하고 이를 관람하였다.
임오. 왕이 인종(仁宗)의 기신(忌辰)이라 하여 영통사(靈通寺)에 가서 분향을 행하였다.
3월 계미. 초하루 일식(日食)이 일어났다.
신묘. 〈왕이〉 나가서 장원정(長源亭)에 거둥하였다.
을미. 죄수를 재심사하였다.
정유.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3일간 격구(擊毬)를 관람하였다.
여름 4월 갑인. 환궁하였다.
신유. 이인실(李仁實)을 수사공 문하시랑평장사(守司空 門下侍郞平章事)로, 고조기(高兆基)를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유필(庾弼)을 비서감(秘書監)으로, 김영석(金永錫)을 삼사사(三司使)로, 최함(崔諴)을 공부상서(工部尙書)로, 정습명(鄭襲明)을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삼았다.
기사. 우박이 쏟아졌다.
무인. 왕비 왕씨(王氏)가 원자를 낳았다.
기묘. 산천(山川) 및 여러 신사(神祠)에서 비를 빌었다.
신사. 백관이 원자 탄생을 하례하였다.
5월 갑신. 원자가 태어났다 하여 경령전(景靈殿)에 왕이 친히 고하였다.
신묘. 다시 기우제를 지냈다.
정유. 왕이 친히 내전(內殿)에서 남두(南斗)에 초제(醮祭)를 지냈다.
경술. 수사공 좌복야(守司空 左僕射) 윤언식(尹彦植)이 사망하였다.
6월 임자. 초하루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다.
을축. 왕이 대관전(大觀殿)에서 보살계(菩薩戒)를 받았다.
무진. 선경전(宣慶殿)에서 삼계신(三界神)에게 초제(醮祭)를 올려 황충(蝗蟲)의 피해가 없어지기를 빌었다.
경오. 수문전(修文殿)에서 반야도량(般若道場)을 열었다.
가을 7월 임진. 청연각(淸讌閣)에서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문공유(文公裕)와 직각(直閣) 고영부(高瑩夫)를 위해 연회를 베풀면서 군신(君臣)의 예를 생략하였다.
송(宋) 도강(都綱) 구적(丘迪)과 서덕영(徐德榮) 등 105인이 왔다.
8월 경술. 송(宋) 도강(都綱) 요제(寥悌) 등 64인이 왔다.
정사. 임대유(林大有)와 황고(黃辜) 등 71인이 왔다.
기미. 〈왕이〉 나가서 장원정(長源亭)에 거둥하였다.
경신. 송(宋) 도강(都綱) 진성(陳誠) 등 87인이 왔다.
임신.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격구(擊毬)를 관람하였다.
이공승(李公升)을 우사간 지제고(右司諫 知制誥)로, 유공재(柳公林)를 시어사(侍御史)로 삼았다.
계유. 평장사(平章事) 고조기(高兆基)와 어사대부(御史大夫) 문공원(文公元), 중서사인(中書舍人) 왕식(王軾)과 좌승선(左承宣) 정습명(鄭襲明)을 인견(引見)하고 술자리를 열고서는 국사(國事)를 논한 뒤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격구(擊毬)를 관람하였다.
9월 임오. 정당문학(政堂文學) 윤언이(尹彦頤)가 사망하였다.
계미.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격구(擊毬)를 관람하였다.
을유. 또 격구(擊毬)와 말놀이를 관람하였다.
정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최유청(崔惟淸)과 어사대부(御史大夫) 문공원(文公元) 등 6인을 인견(引見)하고 술자리를 마련한 뒤,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격구(擊毬)를 관람하였다.
경인. 죄수를 재심사하였다.
계사.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격구(擊毬)를 이틀간 관람하였다.
병신. 밤중에 또 서루(西樓)에 거둥하여 격구(擊毬)를 관람하였다.
경자. 관덕정(觀德亭)에 나아가 군대를 사열하고 물품을 차등있게 하사하였다.
신축. 재추(宰樞)와 시신(侍臣)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임인. 군대를 사열하였다.
계묘. 수창궁(壽昌宮)으로 돌아왔다.
겨울 10월 갑자. 대관전(大觀殿)에서 소재도량(消災道場)을 6일간 열었다.
임신. 선경전(宣慶殿)에서 백좌회(百座會)를 3일간 열고 구정(毬庭)에서 반승(飯僧)하였다.
11월 정해. 이지중(李之中)을 보내어 금(金)에 가서 생신을 축하해 준 데에 대해 사례하게 하였다.
기축.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법왕사(法王寺)에 행차하였다.
신묘. 홍원척(洪源滌)을 보내어 금(金)에 가서 신년을 하례하게 하였다.
을미. 금(金)에서 완안다우(完顔多祐)를 보내어 와서 왕의 생신을 축하하였다.
지례사(持禮使) 김경원(金景元)을 보내어 금(金) 동경(東京)에 가게 하였다.
신축. 허순(許純)을 보내어 금(金)에 가서 토산물을 바치게 하였다.
정미. 한정(韓靖)을 보내어 만수절(萬壽節)을 하례하게 하였다.
12월 무오. 죄수를 재심사하였다.
기미. 고조기(高兆基)를 권판이부사(權判吏部事)로 삼았다.
갑자. 검교소부소감(檢校少府少監) 고원인(高元仁)이 자신이 지키는 관아에 있는 비단 108필을 훔치자, 그 죄가 교수형에 해당하나 사면령이 내리기 전 범죄라 하여 등을 곤장으로 치는 형벌[杖脊]을 행한 후 먼 섬으로 유배 보내었다.
임신. 왕충(王冲)을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삼은 뒤 치사(致仕)하게 하고, 고조기(高兆基)를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로, 김영관(金永寬)을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상서병부사(中書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 判尙書兵部事)로, 최유청(崔惟淸)을 참지정사 판상서형부사(參知政事 判尙書刑部事)로, 이언림(李彦林)을 병부상서(兵部尙書)로, 문공유(文公裕)를 시형부상서(試刑部尙書)로, 김단(金端)을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삼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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