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적멸보궁과 평창 상원사
보천ㆍ효명태자 5만 불보살 예배 수행
“언젠가 제가 앉을 자리” 발원해 볼만…
“세간에 일곱 가지 중한 것이 있으니
불법승 삼보와 부모, 임금, 선지식”
- 세조 ‘상원사 중창을 위한 글’에서
“소리 웅장…백리 밖에도 들리는 명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명품 범종
세계 최초 ‘밀교 37존불 만다라’ 표현
결가부좌 푼 편안한 모습 문수동자상
목숨 걸고 문화재 지킨 한암스님 결단
사찰 창건, 전법에 얽힌 이야기 푸짐
범종 몸통의 주악비천상. 천의를 휘날리며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성지 오대산 적멸보궁과 상원사는 누구나 한번쯤 다녀온 사찰이다. 옛길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첩첩 쌓인 높은 산봉우리는 불보살의 현신(現身)을 보는 듯 경이롭다.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신라 자장율사가 선덕왕 10년(636)에 중국의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받아 모신 도량이다. 또한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효명태자가 이곳에 들어와 5만 불보살 진신에게 일일이 차를 달여 바치며 예배하고 수행한 곳이다. 효명이 성덕왕이 되자 705년에 진여원(현 상원사)을 창건했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적멸보궁 뒤편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있다. 이 때문에 전각 내부에는 부처님의 형상을 모시지 않아 보단에 빈 방석 하나만 있다. 불자들의 궁극적 목적은 성불에 있으니 “이 자리는 제가 꼭 앉도록 해 주십시오, 제가 꼭 부처를 이루어 언젠가는 제가 앉을 자리입니다” 이런 발원도 필요하겠다.
보물 제1995호 ‘평창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내부. 상원사를 지나 중대(中帶) 사자암 위쪽에 있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이다.
“불제자 조선국왕 이(李)”
상원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왕은 바로 조선의 호불군주 세조이다. 세조는 상원사 중창을 위해 직접 글을 지었는데 “세간에 일곱 가지 중한 것이 있으니 불법승 삼보와 부모, 임금 그리고 선지식이다. 삼보는 세간을 벗어나는 근본이고, 부모는 생명을 기르는 근본이며, 임금은 백성의 몸을 보존하는 근본이며, 선지식은 미혹을 인도하는 근본이 된다. 혜각존자 신미 스승을 위하여 같이 기뻐하며 비용을 도와서 끝내 바른 인(因)을 삼고자 한다. 불제자(佛弟子) 조선국왕 이(李)”라고 했다.
유교국가에서 국왕이 당당히 불제자임을 표방한 세조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고, 조선왕조를 반석위에 올려놓는 성군이 되었다. 세조의 후원에 힘입어 상원사는 1465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인 1466년에 완공됐다.
한편, 세조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혼백이 침을 뱉는 꿈을 꾸고 나서 피부병에 걸렸다고 한다. 세조는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상원사로 가던 중 계곡에서 혼자 목욕을 하는데 갑자기 어린 동자가 나타나 세조의 등을 밀어 주었다고 한다. 세조는 “임금의 옥체를 닦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자 동자는 “임금께서도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하였다. 놀란 세조가 돌아보니 동자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급히 화공을 불러 직접 본 동자를 그리게 하고 나무로 형상을 만들어 상원사에 봉안하였으니 지금의 문수동자이다.
문수동자의 형상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에 이마머리는 가지런히 빗질을 하여 단정하고 볼은 포동포동하며, 옷은 부드럽고 편하게 표현됐다. 설법인(說法印)을 한 양손가락은 꼭 살아서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큰 귀와 목의 삼도, 가슴의 영락은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가부좌를 풀어버린 다리는 어린 동자의 발가락이 꼼지락 거리는 듯 편안한 모습이다. 만약 어른처럼 결가부좌를 하였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웠을까? 보는 사람마다 다리에 쥐나니 편히 앉으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예배의 대상으로서 모셔진 국내 유일의 동자의 모습으로 복장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 형상불을 모셨다’는 내용이 있다.
국보 제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오대산 상원사 가는 길에 문수동자를 친견한 세조와 동자의 대화도 흥미진진하다.
문수전 계단 아래쪽에는 한 쌍의 돌 고양이가 조각되어 있는데 상원사를 찾은 세조가 문수전으로 들어서려 할 때 고양이가 세조의 용포를 물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알고 보니 법당 안에 자객이 숨어있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세조는 고양이를 위해 강릉 산속 못 쓰는 제방 안의 200석 지기의 땅 묘전(猫田)을 하사했다.
문수전 계단 아래쪽에는 한 쌍의 돌 고양이 조각
‘밀교 37존불 만다라’ 그린 범종
상원사 동정각(動靜閣)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고 아름다운 소리와 문양을 지닌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범종이 있다. ‘동정’이란 범종소리의 큰 울림과 울림이 끝난 다음의 절대적인 고요함을 의미한다. 이 범종은 원래 안동도호부에 걸렸던 것으로 안동 <영가지(永嘉誌)>에서는 “종의 소리가 웅장하여 백리 밖에서도 들리는 명종”이라 했다. 왕명에 의해 예종 1년(1468)에 오대산 상원사로 옮겨 달았는데 크기는 높이 167cm, 구경 91cm, 두께 48mm, 무게 3379근의 큰 범종이다.
특히 세계최초로 밀교 37존불(三十七尊佛) 출생의 만다라를 표현한 범종이다. 범종 자체를 나타낸 중앙의 비로자나불과 사방 각각 4개의 연못 속에는 9개의 연꽃 봉오리가 있다. 그 가운데는 사방불을 나타낸 4개 연꽃 봉오리가 중앙에 있고, 이 사방불을 에워싼 사방 각각 8개의 봉오리는 금강계 32보살들로 37존불을 표현했다. 이처럼 한국 범종에는 밀교의 수행법인 신구의(身口意) 삼밀의 교리가 투영되어 있다. 신밀은 범종에 연꽃 봉오리로 표현된 37존불의 형상(身)을 보고, 구밀은 범종의 소리로 부처님의 음성(口)을 듣고, 의밀은 범종의 형상과 소리를 통하여 37존불의 출생의미(意)를 느껴는 것이다. 한국 범종은 부처님이나 보살 등 초월적인 존재를 직접 형상과 소리로 파악하여 그것과 일치하려는 중생들의 염원을 나타낸 것으로 그 조형에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범종에 37존불이 출생하니 천인과 화엄성중이 예경과 찬탄, 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범종의 몸통에는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이 뒤엉켜 휘날리며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주악천인들이 37존불의 출생을 찬탄한다. 뿐만 아니라 범종의 윗부분 띠에도 2명의 천인이 피리와 쟁을, 아랫부분 띠에도 4명의 천인들이 취악기, 피리, 장고, 비파로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또한 범종을 매다는 용뉴의 용은 위엄이 있고 큰 눈, 오뚝 선 귀와 날카로운 뿔, 크게 벌린 입, 억세고 힘찬 발과 다리로 37존불을 수호할 뿐만 아니라 등에는 필률이라는 최상의 악기로 찬탄하고 있다.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銅鐘)’. 남아 있는 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상원사 범종’으로 많이 불린다.
“나와 문수동자를 다비하라”
6ㆍ25전쟁 때 국군이 상원사를 불태우려 하자 한암스님은 목숨을 걸고 “나와 문수동자를 다비하라”며 문수전에서 참선을 했다. 스님의 그 같은 결단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범종과 문수동자를 지켜낼 수 있었다. 우리의 문화재가 불타거나 사라지는 것은 역사에 용서 받지 못하는 행위이다. 상원사 한암스님처럼 우리 문화재 수호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다.
이밖에도 영산전 앞에는 세조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깨어진 석탑이 세월의 아픔을 간직한 채 서 있다. 이 아름다운 석탑이 어떤 연유(緣由)로 파손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탑에서 연꽃 피어오르듯 고개를 내민 부처님과 보살님은 예쁘기만 하다. 손을 들거나 고개를 약간 기울거나 하여 부처님 가족사진을 보는 것 같다. 이 석탑도 눈여겨 볼만하다.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36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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