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애왕(閔哀王)
민애왕(閔哀王)296 신라의 제44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838년~839년이다. 《삼국유사》 왕력편과 《신라민애대왕석탑기(新羅敏哀大王石塔記)》에는 민애(閔哀)를 ‘민애(敏哀)’로도 표기하였다. 김충공의 아들로, 838년 정월에 희강왕을 핍박하여 죽이고 즉위하였으나 839년에 김우징 일파에 의하여 시해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닫기이 즉위하니, 성은 김씨(金氏)이고 휘는 명(明)으로,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증손이다. 대아찬(大阿湌) 충공(忠恭)의 아들로, 여러 번 벼슬하여 상대등(上大等)이 되었다. 시중(侍中) 이홍(利弘)과 왕을 핍박하여 살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선강대왕(宣康大王)297 흥덕왕의 동생인 김충공(金忠恭)을 말한다.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봉암사지증대사비문(鳳巖寺智證大師碑文)》에서는 김충공을 선강태자(宣康太子)라 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쪽)3닫기의 시호(諡號)를 추증(追贈)하고, 어머니 박씨(朴氏) 귀보부인(貴寶夫人)298 《삼국유사》 왕력편 민애왕조에서는, 귀파부인(貴巴夫人)으로 혜충왕(惠忠王) 즉 인겸태자(仁謙太子)의 딸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귀보부인의 성은 김씨였을 터이므로 《삼국사기》와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닫기을 선의태후(宣懿太后)라 하였으며, 부인 김씨(金氏)를 윤용왕후(允容王后)299 《삼국유사》 왕력편 민애왕조에, 무용황후(无容皇后)로 영공(永公) 각간의 딸이라 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33쪽)닫기라 하였다.
이찬(伊湌) 김귀(金貴)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삼고, 아찬(阿湌) 헌숭(憲崇)300 헌숭(憲崇)은 이곳에서만 보이는 인물로 행적은 미상이다. 한편 《삼국사기》 권38 잡지 직관(上)에 의하면, 시중에 보임될 수 있는 관등은 대아찬에서 이찬까지였다. 그런데 헌숭은 아찬으로서 시중이 되었으므로, 《삼국사기》 직관지의 규정과는 어긋난다. 아찬으로 표기한 본문이 오기인지 아니면 예외적인 인사조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p333~334닫기을 시중(侍中)으로 삼았다.
2년(839년) 봄 윤 정월에 밤낮으로 행군하여, 19일에 달벌(達伐) 언덕에 이르렀다.의 옛 이름이다. 이재호, 《삼국사기》 1, 솔, 1997, p394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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