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신왕(阿莘王)
아신왕(阿莘王)은 침류왕(枕流王)의 맏아들이다. 혹은 아방(阿芳)이라고도 한다. 그가 한성(漢城)의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광채가 밤을 밝혔다. 그가 장성하자 의지와 기풍이 호방하였으며, 매 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하였다. 침류왕(枕流王)이 사망하였을 때, 그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의 숙부(叔父) 진사(辰斯)가 왕위를 이었는데 진사왕(辰斯王)이 재위 8년에 사망하자 그가 즉위하였다.
2년 봄 정월, 왕이 동명왕(東明王)의 사당에 배알하고 또한 남쪽 제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다.
진무(眞武)를 좌장(左將)으로 임명하여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다. 진무(眞武)는 왕의 외삼촌으로서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많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가을 8월에 왕이 진무(眞武)에게 “관미성(關彌城)은 우리 나라 북쪽 변경(北鄙)의 요새이다. 그 땅이 지금은 고구려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것을 과인(寡人)은 애통해 하니, 그대는 응당 이 점에 마음을 기울여, 이 땅을 빼앗긴 치욕을 갚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은 마침내 1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의 남쪽 변경(南鄙)을 칠 것을 계획하였다. 진무(眞武)는 병졸보다 앞장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석현(石峴) 등의 다섯 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먼저 관미성(關彌城)을 포위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성문을 닫고 굳게 방어하였다. 진무(眞武)는 군량의 수송로를 확보하지 못하여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3년 봄 2월에 왕의 맏아들 전지(腆支)를 태자로 삼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왕의 이복동생 홍(洪)을 내신좌평(内臣佐平)으로 임명하였다.
가을 7월에 고구려와 수곡성(水谷城) 아래에서 싸워 패배하였다.
낮에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4년 봄 2월에 혜성(星孛)이 서북쪽에 나타났다가 20일 만에 사라졌다.
가을 8월에 왕이 좌장(左將) 진무(眞武)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니, 고구려 왕 담덕(談德)이 직접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패수(浿水)에 진을 치고 대항하였다.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으니 사망자가 8천 명이었다.
가을 8월에 왕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사를 출동하여 한산(漢山) 북쪽 목책에 이르렀다. 그날 밤에 큰 별(大星)이 떨어졌는데 진영에서 소리가 났다. 왕은 이를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여 공격을 중지하였다.
9월에 서울 사람(都人)들을 모아 서대(西臺)에서 활쏘기를 연습하게 하였다.
8년 가을 8월에 왕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사와 말을 대대적으로 징발하니, 백성들이 병역을 고통스럽게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라로 도망하였고, 이 결과로 호구가 줄었다.
9년 봄 2월에 혜성(星孛)이 규(奎)와 루(婁) 성좌에 나타났다.
여름 6월 초하루 경신일에 일식이 있었다.
11년 여름, 큰 가뭄이 들어 벼가 타들어가자, 왕이 직접 횡악(橫岳)에서 기우제를 지내니 곧 비가 내렸다.
5월에 왜국(倭國)에 사신을 보내 큰 구슬을 요구하였다.
12년 봄 2월에 왜국(倭國)에서 사신이 오자 왕이 이들을 환영하고 위로하였으며, 특별히 후하게 대우하였다.
가을 7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 변경(邊境)을 침공하였다.
'세상사는 이야기 > 삼국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5권(卷第二十五) 백제본기(百濟本紀) 구이신왕(久爾辛王) (0) | 2020.03.09 |
---|---|
제25권(卷第二十五) 백제본기(百濟本紀) 전지왕(腆支王) (0) | 2020.03.08 |
제25권(卷第二十五) 백제본기(百濟本紀) 진사왕(辰斯王) (0) | 2020.03.05 |
제24권(卷第二十四) 백제본기(百濟本紀) 침류왕(枕流王) (0) | 2020.03.04 |
제24권(卷第二十四) 백제본기(百濟本紀) 근구수왕(近仇首王) (0) | 2020.03.03 |